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려 하고/제주어선 빌어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흥양의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 있다/…'
단가 '호남가'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고장인 함평. 함평은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인문과 예술이 공존해온 문향(文鄕)이다. 선비의 시심과 의병의 기개, 농민의 애환이 어우러진 함평의 문학은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을 이어오며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왔다.
함평은 역사적으로 문학적 자산과 역량이 풍부한 고장이다. 곤재 정개청의 '우득록'에 실린 시문학을 비롯해, 수재 박봉혁의 '영언전' 속 '기성가'와 '조선가', 그리고 심수택 등 의병장들의 의병활동을 뒷받침한 인문학적 유산은 모두 함평 문학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정경득과 정호인이 왜란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남긴 일기와 시문학은 전쟁에 맞선 정의의 기록문학이자 당대 사회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와 함께 칠실 이덕일의 '칠실유고'에 담긴 빈궁문학과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담아낸 한시 문학은 민중적 정서와 시대정신이 결합된 문학적 성과로 손꼽힌다.

◆'입'으로부터 내려온 문학
함평의 문학은 시가문학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시조에는 칠실 이덕일(1561~1622)의 '우국가', 수정 윤제(1562~1645)의 '심덕성가', 송돈 윤정우(1603~1690)의 '기우가' 등이 그 시초다.
시에는 곤재 정개청(1529~1590) '우득록'의 시, 송파 나각(1574~1644) '송파록'의 시, 태허재 안지환(1774~1851) '태허재유고'의 시가 있으며, 호산 정경득(1569~1639) '만사록'의 일기와 서문, 월봉 정희득(1572~1640) '해상록'의 일기와 서문 등의 일기문들은 난중(亂中)과 피란 시기의 현실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문학은 단순한 개인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전황과 백성의 삶, 의병 활동 등을 충실히 담아내며 문학과 역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의병사, 전쟁사, 민속사 등 다방면에서 활용 가능한 귀중한 지역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함평 문학의 또 다른 한 축은 구비문학이다. 구비문학은 입과 귀로 전해지는 민중의 이야기로, 민요·설화·전래동요 등을 통해 시대를 관통해왔다. 특히 전래민요의 경우, 함평은 전남 서부 평야지대 '긴 소리권'에 위치해 있어 노동요 전승이 활발했다. 대표적으로 '들 노래'는 무안, 나주, 광산, 영광, 영암 등지에서도 널리 퍼져 불렸으며, 공동 노동의 리듬과 지역민의 삶을 반영한 중요한 민속자료로 손꼽힌다.
이 외에도 훈화요, 아기를 어르는 노래, 내방요, 전래동요 등이 다양하게 전해졌으며, 이들 민요는 함평 토박이의 말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소재 또한 새·동물·곤충 등 자연에 밀착돼 있고, 아이들의 정체성과 보호 의식이 담긴 가사들도 다수다.
설화와 민담도 풍부하게 전승돼왔다. '함평읍 기산영수', '수문이 불맥이제의 유래', '아차동 미륵할머니 전설' 등은 단순한 이야기의 전승을 넘어 공동체의 지혜와 윤리를 담고 있다. 특히 지명 유래와 결합된 전설들은 민중적 정서와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자산으로, 오늘날까지도 함평인의 문화적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노래와 시에 기록된 함평
함평은 오래전부터 시와 노래의 공간이었다. 이를 상징하듯 조선 후기 단가 '호남가'의 첫 고을로 등장하는 지명이 바로 함평이다. 호남을 유람하던 풍류객들이 첫발을 내딛은 곳이 함평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드넓고 풍요로운 함평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당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함평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작품 중 대표작으로는 '함가'와 '함산가'가 있다. '함가'는 태허재 안지환(1774~1851)이 말년에 지은 노래로, 그의 문집 '태허재유고'의 '잡체' 편에 수록돼 있다. 복잡한 세상살이 속에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삶을 반성하며, 청빈하고 유유자적한 삶의 태도를 노래한 작품이다. 율시나 절구처럼 정형화된 형식 없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창작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다른 작품 '함산가'는 곡운 권복(1769~?)이 지은 시가로, 그의 저서 '곡운공기행록'에 수록돼 있다. 조선 후기 문과에 급제한 권복은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그 기록을 남겼는데, '함산가'에는 함평의 산천과 인심이 담담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현대 문학에서도 함평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문병란 시인(1935~2015)의 '함평행'이다. 1970년대 초 시인이 함평을 오가며 발표한 이 시는 당시 새마을운동과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변화해가는 농촌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개발의 현장보다도 여전히 평온하게 살아 숨 쉬는 함평의 들판과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더 깊은 시선을 보낸다. 함평평야의 넉넉한 품성과 전통 농어촌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서정과 지성의 뿌리 이어져
수려한 자연환경을 품은 함평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문인들을 배출했다. 시인 최석두, 이수복, 양성우, 박노해를 비롯해 문학평론가 김우창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이름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연을 맺었다.

'별이 날아가는 밤', '솔개' 등을 남긴 시인 최석두(1917~1951)는 함평읍 기각리 출신이다. 서자 신분으로 태어난 그는 가족제도의 모순 속에서 겪은 삶의 상처를 시로 풀어냈다. 초기에는 서정성과 미학적 감각을 드러냈고, 해방 이후에는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조국의 자주와 통일을 열망하는 시를 발표했다.

이수복(1924~1986) 시인은 '봄비'와 '동백꽃' 등을 통해 한국적 정서와 기독교적 세계관을 조화롭게 형상화했다. 그는 독학으로 초등과정을 마치고 목포 문태중학교에 편입했으며, 광주수피아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서정주 시인의 지지를 받으며 시작된 이 시인의 문단생활은 1958년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신인으로서의 문명을 알렸다. 이후 1968년 현대문학사에서 시집 '봄비'를 출간했다. 이수복 시인은 1930년대 김영랑으로 대표되는 시문학파의 순수시를 계승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줄임표의 적극적인 활용과 조화로운 음조로 시의 음악성을 극대화한 점도 특징이다.

함평 출신의 문학평론가 김우창(1937~)은 한국 비평문학의 거목이다. 본적은 함평군 엄다면 신계리, 출생은 광주다. 그는 서구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문학을 해석하고 한국문학의 독자적 구조를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 학술단체 아카데미아 암브로시아나 정회원으로 입성했으며, 2022년에는 최고등급 문화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함평의 문맥을 이어가기 위한 활동도 지속돼 왔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8년 김경태, 리상, 이국헌 등이 중심이 돼 함평 최초의 문학동인회인 '함평문림회'를 창립했다. 문림회는 동인지 '함평문림'을 발간하고, 백일장 대회 등을 통해 지역 문학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70년대에는 젊은 문학도들이 '샛별문학회'를 조직했고, 종합교양지 '함평문화', '월간 아동문학', 계간 '크리스찬문학' 등의 간행물도 잇따라 창간됐다.
함평 출신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강경호가 1996년 창간한 계간 '시와사람'은 지역문예지의 한계를 탈피해 전국의 문인들을 상대로 펴내며 주목을 받았다. 30여 년째 발행되고 있는 '시와사람'은 다양한 기획과 좌담회, 인터뷰를 입체적으로 실시하며 한국문학을 견인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8년 결성된 함평문인협회(이하 '함평문협')는 함평문화제, 고등학생 시낭송 대회 개최, 해외 문학 심포지움 참가 등 다양한 문학활동을 해왔다. 함평문협은 매년 연말 1회 발행되는 연간집 '함평문학'을 발간하며 회원들의 작품과 출향인사, 그리고 외부인사의 작품들을 실으며 지역 문학의 뿌리를 다지고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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