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제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서... 들어줘 감사해요. 우리 열매는 절대 헤어지지 말아요.”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최오월(가명)씨의 말이 끝나자 여성들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옆 사람 손을 다시 한번 꼭 잡는 이도 있었고, 한없이 눈물을 쏟는 옆 사람의 등을 쓸어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달 21일 찾은 광주 서구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 5·18 성폭력 피해자 공동체 ‘5·18열매’의 증언치유 자리에는 오랫동안 혼자인 줄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고 앉아 있었다.
증언치유는 한 사람을 ‘오늘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의 어린 시절과 가족, 일, 사랑했던 시간과 잃어버린 기억까지 함께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피해 순간만 반복해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삶 전체를 다시 꺼내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날의 주인공은 최씨였다.

영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최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생계를 책임질 어른이 사라지자 어린 딸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집안일과 생업을 떠안아야 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초등학교를 다 마치기도 전에 품을 팔러 다녀야 했고,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올라왔다.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일은 운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 운전수는 손가락에 꼽히던 시절이었다. 마땅한 연습장이 없어 술을 만들고 남은 술도가니 찌꺼기를 길바닥에 쌓아두고 그 사이를 오가며 핸들 감각을 익혔다고 했다. 최씨는 18살에 단번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는 “그때는 여자가 운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내가 면허를 땄다고 하니 고향에서는 노는 여자라는 소문까지 돌았다”며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악착같이 버텼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후 택시 운전을 시작한 최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기업 통근차 운행까지 도맡았다. 새벽 어스름한 시간 집을 나가 밤늦게야 돌아오는 날이 많았지만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최씨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이어지자 원 안 여기저기서 장난스러운 농담이 쏟아졌다.
“그 시절 여자 운전수면 엄청 멋있었겠다.” “언니 인기 많았겠네.” “내가 그때 알았으면 언니 따라다녔겠다.”
여성들은 마치 학교때로 돌아간 사람들처럼 웃었다. “완전 신여성이었네”라는 말이 나오자 최씨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고 현재 남편과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가 이어지자 “운전하는 모습 보고 반했을 것 같다”며 짓궂은 농담이 이어졌다.
신여성으로서 운전대를 잡고 살아낸 최씨 삶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가 평생 가슴에 묻어둔 1980년 5월로 향했다.
당시 임신 3개월 상태였던 최씨는 귀가하던 길 계엄군에게 붙잡혀 성폭력을 당해 아이를 잃었다. 그는 “애들이 집에 있는데 여기서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무조건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 최씨 삶에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공포가 남았다. 군복만 봐도 몸이 굳었고 밤이면 잠드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했다. 남편과 한 공간에 누워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최씨는 “제일 미안한 건 막내, 그 아이”라며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마흔다섯살은 됐을 텐데 분명 딸이었을 것 같다. 내가 지키지 못한 것 같고 평생 다 내 탓 같았다”고 흐느꼈다.
원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상담전문가는 참가자 가운데 한 사람을 바라보며 “오늘은 저분을 막내라고 생각해보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씨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막내야,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5·18 성폭력 문제는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못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고 수치심과 낙인 속에서 침묵해야 했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공동조사단 활동과 진상조사가 이어지면서 피해자들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최씨의 또 다른 이름은 ‘1번’이다. 정부 성폭력 공동조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조사에 참여한 피해자에게 붙은 번호였다. 그는 처음 조사에 나설 당시만 해도 자신뿐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난해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공동체 ‘5·18열매’를 만들었다.

증언치유가 끝난 뒤에도 여성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직접 밭에서 키운 채소를 나눠주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삼삼오오 모여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오래 알고 지낸 이웃들 같기도 했다.
최씨는 “예전에는 나 혼자만 이런 줄 알았다. 아주 긴 시간동안 말도 꺼내지 못 했고, 누가 알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왔다”며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고 친구다. 우리 열매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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