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이후 더 처절했던 삶···5·18 성폭행 피해자들의 생애사적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선정태 기자
업데이트 2026.05.11. 16:54
■5·18 46주년 기획-고통의 5월, 성폭력 피해 넘어 치유로 (1)프롤로그
긴 시간 흘러 피해 규모 안돼…52건 조사 16건 인정 불과
계엄군, 10대부터 임산부까지 무차별적으로 끌고 가
‘수치스러운 삶’ 고통…우울증약 복용에 자살 시도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되고 있다. .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1980년 5월.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군홧발에 다치고 잡혀가 고문당하고 죽임당할 때 한 편에서는 광주의 누이와 어머니들은 평생 밝히지 못한 치욕을 당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이유도 모른 채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당했던 광주시민들이나 전남도청을 지킨 열사들은 그 피해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성폭행 피해자들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규모나 인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9월14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바탕으로 2019년 12월 27일 성폭력 피해 실상 규명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이후 2024년 6월 종합보고서를 제출하기 까지 5년 간 정황 증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피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 기간은 고작 9개월여에 불과했다. 이 기간동안 52건의 피해에 대해 조사를 벌였지만 36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밝혀진 성폭력 사건은 고작 16건이었다.

성폭행 피해를 오히려 숨겨야 할 치부로 여기거나, 피해자가 오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여서 진술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고, 피해자가 사망한 후 가족이 조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 따르면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도심 시위진압작전을 벌였던 1980년 5월18일부터 광주재진입작전이 이뤄졌던 5월 27일까지 발생했다. 피해 장소도 광주 도심부터 주택, 야산까지 가리지 않았다.

각각의 피해 실상도 참혹하고 잔인했지만 사건 이후 피해자의 삶은 더 처참했다.

네 살배기 아이의 엄마이자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던 한 피해자는 5월18일 차량을 운전해 퇴근하던 길에 5~6명의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얼굴을 가격당한 후 승용차 뒷좌석에서 성폭행당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당시 고2였다. 5월19일 등교했다가 오후 2시께 걸어서 귀가하던 중 군용화물차에서 내린 계엄군들에 의해 납치당했다. 아주머니 2명과 함께 백운동 인근 야산으로 끌려 올라갔다가 산속에서 성폭행당했다.

대학교 중퇴 후 버스 안내양을 하던 또다른 피해자는 군인 3명에게 끌려가 집단 성폭행당했으며, 공장에 다니던 21세 여성도 5월23일 동료와 퇴근하던 길에 군인들에게 붙잡혀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계엄군들은 단독이 아닌 2~6명씩 몰려다니며 피해 여성들을 총칼과 군홧발로 때리며 납치·집단 성폭행하면서 피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은 평생 지속될 정도로 심각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사건 이후 자궁 물혹·통증, 하혈, 복통 등 신체적 후유증을 오랫동안 앓았다. 특히 두통과 불면증은 피해자들을 평생 괴롭히면서 수면제와 신경과 약을 계속 복용해야 했다. 한 피해자는 매일 두통약을 3~5알씩 먹어야 할 정도로 시달리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끔찍한 고통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심각해지면서 지속적인 자살 시도와 함께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피해자는 특히 군복과 군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각해지는 ‘5월 증후군’을 앓아 매년 3월께부터 5월까지 우울증약을 다량 복용해야 했다.

어떤 피해자는 성폭행 당한 이후 자신의 자궁을 더럽다고 여기며 빈번하게 씻기도 했다. 어떤 피해자는 스스로를 ‘자궁없는 X신’같다고 느끼며 남자들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1980년 5월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의 광기와 욕구로 저지른 성폭력의 양상은 피해자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포를 되살리게 하는 등 정신까지 파괴했다. 피해자는 수치와 분열 속에서 자신을 탓했고, 몸의 상처보다 깊은 트라우마를 평생 끌어안고 시달려야 했다.

5·18 당시 성폭력 피해의 진실이 너무 늦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긴 시간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5·18 성폭력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2024년 8월29일 16명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모여 ‘5·18열매’를 꾸렸다.

‘5·18열매’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떠올리기 싫었던 상처를 가까스로 꺼내며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 이에 본보는 ‘5·18열매’가 어떤 활동을 통해 ‘생애사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현실적 한계도 살펴본다.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이들의 피해를 어떻게 어루만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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