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詩와 신앙이 맞닿은 곳에서의 서정과 사유

입력 2024.06.11. 15:28
'목사 시인' 김휼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 출간
무너길 것만 같은 존재의 곁에 머물며
말을 들어주고 슬픔 고통 감내 안간힘
손 내밀어 서로 도와 소소한 일상 재건

김휼 시인은 120년을 넘긴 유서 깊은 광주 한 교회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면서 시단에 정식 데뷔를 통해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목사 시인이다.

그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여 결코 사소하지 않은 미학과 시상을 시로 표현, 범상치 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의 시편에는 시와 신앙이 접목되는지점의 풍경과 우리네 삶을 넘나들며 궁구한 서정과 사유의 미학이 펼쳐지고 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9남매 중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시인은 "헤아리는 마음으로 사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 없어요."라고 말한다.

김휼 시인이 시집 '너의 밤으로 갈까'(시인의 일요일刊)를 펴냈다.

그는 무너질 것만 같은 존재의 곁에 머물며 마음을 애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시로서 보여준다. 그는 귀가 깊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도맡는 시인으로 바깥의 슬픔을 다독이다 자기 안의 슬픔을 앓게 되더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려 안간힘을 쓰며 버틴다. 시인은 구체적 슬픔의 안쪽에서 손을 내밀어 소소한 일상을 재건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일이 가능하게 만든다. 김휼 시인은 이러한 자세와 역할이 시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묻고 고민한다 해도 적절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분노하고 탄식하는 것은 마땅히 필요한 노릇이지만, 그것이 과도한 격정이 되지 않도록 슬픔을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다. 분노와 탄식 이후,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도록 단정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인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이는 세계의 아픔을 대속하는 시인의 역할과 유사한 맥락처럼 보인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를 어미의 고통, 반대로 어미를 잃은 자식의 슬픔과 "지붕을 잃고 싶지 않아" 그저 가두고 지키는 일에 생을 걸어온('설합') 이들의 불안 등 이러저러한 아픔에 공감한다.

김휼 시인은 '나'를 "너의 밤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이는 골목이 너와 내가 함께 공유하는 삶인 것처럼 '너의 밤'이 '나의 밤'과 다르지 않아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고자 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물론 이때 주체는 타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여 타자를 주체에 귀속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섣불리 타자와 주체를 동일시할 경우, 그것은 환대가 아닌 연민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골목의 밤은 미완의 사랑 같다// 어슬렁거리는 그리움과 내일을 맞대 보는 청춘들의 객기, 접시만 한 꽃을 피워 들고 저녁을 달래는 담장, 그 아래 코를 박은 강아지의 지린내까지// 어둠에 물드는 것들을 간섭하느라/ 거북목이 되는 중이지만 난 괜찮다// 홀로 선 사람은 다정을 기둥으로 대신하는 법이라서/ 담보 없는 빈 방과 함석집 고양이의 울음까지 시시콜콜 알려 주는 이 골목의 살가움이 좋다// 붙박이로 있다 보니 사고가 경직될까 봐/ 나도 가끔 어둠에 잠겨 사유에 들곤 한다// 진리는 항상 굽은 곳에 있다// 비탈을 살아 내는 이 기울기는 너의 밤으로 가기 좋은 각도// 퇴행을 앓는 발목에 녹물이 들겠지만/ 굽어살피는 신의 자세를 유지한다// 깊숙이 떠나간 너를 찾을 때까지"('너의 밤으로 갈까' 전문)

김휼 시인은 이렇듯 '목사 시인'으로 자신의 신앙과 시가 맞닿은 곳에서 끌어오린 서정과 사유를 시로 완성했다.

김휼 시인은 장성에서 태어나 지난 2007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열린시학상, 목포문학상 본상을 받았고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를 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이건 어때요?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

문학/책 주요뉴스
댓글0
0/300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