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주기 민주묘지 전국 학생들 추모 물결
인천·경남, 29년째 10㎞ 걸어온 한빛고 등
소설 주인공 문재학 열사께 "헌신에 감사"오월 영령에게 헌화하는 초등생들
[광주=뉴시스]이현행 기자 = "광주를 위해 헌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46주기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사흘 앞둔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가로수 사이를 촘촘하게 잇고 있는 백색과 황색의 추모 리본들이 오월의 바람에 일제히 나부끼며 참배객들을 맞이했다.
리본마다 정성껏 눌러 쓴 글귀들은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참배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리본에 담긴 간절한 마음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영령들이 잠든 곳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민주묘지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로 붐볐다. 평소의 정적 대신, 오월 주간을 맞아 영령들을 기리려는 발길이 묘역 곳곳을 메우며 어느 때보다 짙은 추모의 열기가 감돌았다.
이날 묘지에는 인천, 경남, 전북 등 전국에서 모인 수백명의 학생이 방문해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특히 29년째 두 발로 걸어 민주묘지를 찾는 담양 한빛고등학교 학생들의 행렬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지난 1997년부터 매년 5·18 주간이 되면 학교에서 묘역까지 약 10㎞에 이르는 거리를 직접 걸어 참배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도 학생들은 땀방울을 흘리며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참배에 앞서 헌화대 앞에 모인 학생들은 소설가 한강의 저서 '소년이 온다'를 낭독했다. 앳된 목소리가 묘역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떨궜다.
[광주=뉴시스] 이현행 기자 = 제46주기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사흘 앞둔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학생들이 한강 작가의 5·18 소설 '소년이 온다'를 낭독하고 있다 2026.05.15. lhh@newsis.com
소설 속 문장들이 한 줄씩 읽힐 때마다 학생들은 차마 묘비를 마주 보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몇몇은 들썩이는 어깨를 감추며 그날의 고통을 가슴에 새겼다.
학생들은 소설 낭독이 끝나자 뜨거운 햇볕을 뚫고 한 묘비에 멈춰섰다. 학생들이 멈춰 선 곳은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 동호의 실제 모델인 문재학 열사의 묘소 앞이었다. 학생들은 조심스런 손길로 비석을 닦아낸 뒤, 그 위에 존경과 사랑을 담은 붉은 카네이션 바구니를 올렸다.
이날 묘역에는 칠순의 참배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주에서 온 김인숙(70·여)씨는 "민주주의가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싶어 왔다. 처음 이곳에 와봤다. 늦게나마 직접 찾아 뵈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제주 출신의 윤오름 학생은 "제주 4·3을 겪은 고장 사람이라 민주화운동이 낯설지 않다. 열사분들의 헌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걷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수경 한빛고 교사는 "매년 묘역을 찾는 것은 역사를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진실된 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며 "아이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올바른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