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졸저 ‘설정환의 도시재설정’ 출판기념회가 끝난 뒤 한 장면이 오래 남았다. 많은 이들이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행사장을 찾은 이영덕 문화유산마을 원장이 담양에서 꺾어왔다며 종이컵에 소담하게 담아 건넨 납매 한 가지였다. 작고 소박한 꽃이었지만, 그 향과 의미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납매(臘梅)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다. 이름의 ‘납(臘)’은 섣달을 뜻하고, ‘납(蠟)’은 밀납을 의미한다. 꽃잎이 마치 밀납으로 빚은 듯 투명하고 단단해 붙은 이름이다. 추위를 견디며 먼저 피어나고, 향기는 은은하지만 멀리 퍼진다. 준비된 시간과 인내가 있어야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다. 지금 우리의 정책 환경을 돌아보며, 왜 납매가 떠올랐는지 곱씹게 된다.
최근 대구 군위의 ‘사유원’이 선보인 프리미엄 여행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 건축, 미술관, 숙박이 하나의 패키지로 묶인 ‘아트 앤 힐링 스테이’다. 개별 자원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정교한 기획을 통해 하나의 경험 상품으로 완성됐다. 관광 분야에서는 이미 ‘연계 설계’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셈이다.
문제는 우리의 정책이 여전히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공약이 쏟아지지만,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적 설계는 드물다. 사업은 많은데 전략은 얕고, 구호는 넘치는데 실행의 연결고리는 약하다. 정책이 모래알처럼 흩어져서는 시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특히 대선 공약과 지방선거 공약 사이의 비연결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국가 단위에서 제시된 방향이 지역 실행 단계에서 이어지지 못하면 정책의 파급력은 반감된다. 관광상품이 체류 동선을 촘촘히 설계하듯, 정책 역시 중앙·광역·기초를 잇는 ‘연계 패키지’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북구 공약으로 ‘국립모빌리티파크 조성’을 제안했고, 정책 현수막이 실제 거리 곳곳에 걸리는 성과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공약의 진짜 가치는 발표가 아니라 실행 구조에서 드러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립모빌리티파크를 중심으로 한 산업·일자리·교육·관광의 생태계 설계다.
국립모빌리티파크는 단순한 전시시설이나 체험공간을 넘어서는 국가 전략 거점으로 구상될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제안될 당시 자동차 산업을 역사·문화·체험·관광·기술개발이 융합된 복합 콘텐츠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토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농림축산식품부, 산림청, 현대기아차 등과의 협력 구조를 전제로 연계성과 연결성, 복합성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서부터 거버넌스형태로 정책의 칸막이를 해체한 상태로 구상되었다.
핵심은 ‘파크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 연계 전략이다. 모빌리티 기업 유치와 미래차 부품 산업 육성, 정비 전문인력 양성 교육,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체험형 관광 콘텐츠 개발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에 북구의 기존 산업 기반과 도시재생 자산, 생활형 창업허브 정책이 결합된다면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훨씬 커질 수 있다.
또한 가족 단위 체류형 관광과 연계한 프로그램 설계도 중요하다. 모빌리티 체험관, 어린이 미래차 교육, 시니어 모빌리티 안전교육, 국제 모빌리티 포럼 개최 등 세대별 참여 구조를 촘촘히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 방문형 시설이 아니라 ‘머무는 산업·머무는 관광’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지방선거는 원래 생활을 바꾸는 선거다. 그럼에도 정책이 여전히 단편적 공약 경쟁에 머문다면 유권자의 무관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이 약속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정교하게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만난 납매 한 가지는 그래서 더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작은 꽃이지만 계절을 앞서 읽고,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향기를 준비해 온 존재. 지금 우리 지역 정치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태도일 것이다.
정책의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흩어진 자원을 엮고,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끝까지 실행 구조를 설계할 때 비로소 향기를 낸다.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납매 향기처럼 은은하지만 분명한 변화의 계절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