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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이어졌다면 참극"···5·18 계엄군이 바라본 '12·3계엄'

입력 2024.12.10. 12:19
"적으로 규정했다면 44년전 비극 되풀이"
"전두환 신군부 주도 충정작전과 비슷해"
후배들에게 "내란 가담 양심고백 나서야"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입구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있다. 2024.12.04. kkssmm99@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44년 전 권력의 총칼 앞에 난도질 당한 광주가 재현됐을지 모릅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 이후 5·18민주화운동 진압에 참여한 계엄군들이 44년 만에 되풀이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부당한 지시에 이뤄진 5·18 유혈진압을 떠올리면서 더 이상 특전사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후배들에게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3공수특전여단 11대대 4지역대장으로 5·18 광주에 투입됐던 신순용(76) 전 소령은 10일 "특수부대 지휘관 출신으로서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고 토로했다.

3공수여단은 5·18 당시 전남대학교에 주둔하면서 대학 일원과 광주역에서 시민들을 유혈 진압한 과오를 갖고 있다.

뒤늦은 참회에 나선 신씨는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당일로부터 딱 41년째 되는 날인 지난 2021년 5월21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에 참배·사죄했다.

신씨는 이번 계엄 사태가 707특임대와 같은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부대가 투입된 데 깊이 우려하고 있다. 전시·계엄 상황 육군 특수전 예하부대에는 '적'으로 규정한 집단이 점거한 지역에 침투, 교란하거나 요인을 체포 또는 사살하는 임무가 주어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3·7·11공수여단이 시위대와 시민군을 '적'으로 인식했던 것처럼 이번 국회의사당 침투·점거 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계엄 사태에는 '행동하는 양심'이 있어 44년 전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안도했다. 현장 지휘관 판단을 일차적으로 따르는 조직 특성상, 윤 대통령의 오판을 직감한 일선 지휘라인이 5·18 당시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침착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봤다.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1980년 5월 당시 광주 진압작전에 투입된 제3공수여단 11대대 소속 지역대장 신순용 전 소령이 21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영령을 참배하고 있다. 2021.05.21.hyein0342@newsis.com

5·18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7중대장이었던 박성현(74)씨도 비슷한 견해였다.

박씨는 과거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7 내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준비했던 '충정작전' 내용을 토대로 국회 점거 시도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정작전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각종 시위와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이 주도적으로 실시한 공세적 진압 작전이다.

특히 전두환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당시 충정작전과 함께 후방 침투 무장공비를 섬멸하는 취지의 '대침투작전'을 병행, 출동할 때 병사들에게 실탄 기본 휴대량을 지급했다.

충정작전은 민간의 시위진압이 목표이기 때문에 실탄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이번 국회 진압 과정에서 계엄군이 실탄을 챙긴 점이 뚜렷하게 확인된다면 대침투작전 성격도 함께 띄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행여나 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시위가 확대됐을 경우 광주에서 벌어졌던 유혈진압이 반복됐을 것이라고 박씨는 주장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 2지역대 7중대장 중대장을 맡았던 박성현(74)씨가 지난 3일 광주 북구 각화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자신이 들은 항쟁 희생자 암매장 사실을 밝히고 있다. 2024.05.06. leeyj2578@newsis.com

80년 계엄군들은 4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특전사가 권력의 총칼로서 또 한 번 이용됐다는 데 크게 분노했다.

이번 계엄 사태 당시 특수 부대원들의 많은 양심 선언을 통해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길 염원하기도 했다.

신씨는 "정권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 세력은 특수부대 등을 이용한 공포 정치를 했다. 44년 만에 같은 상황이 발생했는데 또 한 번 이용됐다는 점에서 참담하다"며 "5·18 당시 우리는 지시에 무비판적이었다. 국회 진압 작전 당시 후배들이 보였던 소극적 태도로 미뤄봐 이제는 불합리한 지시에 항거할 수 있다는 양심이 5·18 이후 각인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작전에 투입됐다는 이유로 후배들이 굉장히 위축돼있을 것 같다. 부당한 지시를 거스르고자 노력하고 국민 명령에 따르려 한 만큼, 양심 고백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며 "이번 계엄은 내란이고 우두머리는 당연히 윤 대통령이다. 군 지휘권을 당장 박탈하고 가담 여부에 따른 처벌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규탄했다.

박씨 역시 "초기 투입된 관측부대원들이 지시를 일부러 더디게 이행한 것으로 보여 예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느껴진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특전사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끔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며 "후배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에 헌신해 달라. 지금처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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