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열다섯에 걸그룹 멤버로 데뷔한 그녀는 어느덧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돼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압구정에서 '써클'과 '쥬얼리' 멤버로 활약한 방송인 이지현(41)과 만났다. 카페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이지현은 활짝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감기 탓인지 목소리는 다소 잠겨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사실 감기에 걸렸어요. 인터뷰하다가 감기 옮으실 수 있어요. 감기 걸리시면 비용 청구하세요."(웃음) 이지현의 농담에 첫 만남의 어색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지현에게 "어릴 때 팬이었는데 인터뷰하니 감회가 새롭다" 했더니 "아줌마 된 모습으로 만나 보니 어떠냐"며 웃는다.
아이돌 시절의 발랄함은 옅어졌지만 한결 우아해졌다고 해야할까. 세월의 흔적이 살포시 새겨져 있었을 뿐 이지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음은 이지현과 나눈 일문일답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미친듯이 바빠요.(웃음)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미용사 자격증 따느라고 오전 10시에 미용학원 갔다가 오후 5시까지 학원에 있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밥 먹이고요. 애들 숙제하는 동안에 또 미용 연습을 해요.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또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미용사 자격증을 따려는 이유는?
"미용 봉사를 목적으로 커트를 시작했는데 해보니까 재밌더라구요. 또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전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구요."
-유튜브 '이지현의 이지바이브' 보니 미용사 자격증 시험에서 다섯 번 떨어지셨더라구요.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건지 몰랐어요. 필기 시험은 한 방에 붙었는데, 실기 때문에…"
-혼자 자녀 키우고 계신데 자격증 준비하느라 많이 힘드실 거 같아요.
"진짜 애들을 돌보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체력적으로 되게 힘들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시던데요.
"네 운동하는 걸 좋아해요. 스트레스도 풀리구요. 원래 운동하면서 미용사 시험 준비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운동도 다 내려놨어요. 완전히 미용사 시험 준비에만 몰두해요. 운동할 시간에 펌 연습 한 번 더 하고 있어요."
-SNS에 올라온 거 보니까 따님이 춤을 잘 추던데요.
"잘 추는 건 아닌데 좋아하더라구요."
-이지현 님 닮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 거 같진 않고요. 이때 여자 아이들이 한창 아이돌 좋아하고 춤 따라하고 막 그럴 때잖아요. 근데 '나도 아이돌 되고 싶다' 그런 얘기는 하더라구요."
-딸이 아이돌한다고 하면 허락하실건가요?
"하더라도 나중에 좀 커서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제가 아이돌 해보니까 너무 어렸을 때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모르고 그냥 살더라고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 자아가 확립된 후에 아이돌 한다면 자기 인생이니까 반대하진 않아요. 근데 만약 어린 나이에 한다면 엄마가 잘 돌봐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지현 님은 중학생 때 데뷔하셨죠?
"네. 1998년에 한일 합작 걸그룹 '써클'로 데뷔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매 순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우선 일본 멤버들이랑 문화 차이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을 좀 무시하는 게 많았거든요. 그런 걸 참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구요. 어린 나이에 피곤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한창 사춘기인데 말도 못하고 그냥 늘 꾹꾹 담아둬야만 했던 것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쥬얼리 시절엔 어땠어요?
"쥬얼리 때는 뭐 스케줄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멤버들하고는 연락 하고 지내시나요?
"네 가끔씩 해요."
-예전에 X맨 '당연하지'로 인기가 대단했는데 '퀸 오브 당연하지'라는 별명도 얻으셨잖아요. 관련해서 비화 같은 거 없나요?
"방송 세트장에서 녹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화장실 들어가서 펑펑 울었어요. '왜 이렇게 나는 나쁜 것만 해야 되고, 나는 나쁜 말만 해서 상대방한테 상처를 줘야 되고…' 저도 모르게 너무 쌓였나 봐요. 더 이상 못하겠더라구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겠네요.
"처음에는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건데 나중에는 상대방 출연자가 정해지면 그 출연자에 대해서 안 좋은 점만 찾아서 공부를 해야 되더라고요. 좋은 공부를 해야 되는 게 아니라 나쁜 공부만 해야 되는 거예요. 사람 눈을 보고 나쁜 얘기한다는 게 아무리 방송이라도 그거 되게 힘들어요."
-또 힘들었던 점은?
"상대방이 울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 진짜 나는 그 자책감에 어떻게 할 줄을 몰라요. 그런 것들이 자꾸자꾸 쌓이다 보니까 진짜 딱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제가 '당연하지'를 잘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타깃으로 삼고 저를 공격할 준비를 해서 오는 거예요. 근데 그게 상처가 안 될 것 같잖아요. 상처가 돼요. 보는 사람은 즐거운데 하는 사람들은 진짜 상처가 되고 힘들었어요."
-오해도 많이 받았겠어요.
"'당연하지'로 이미지가 너무 강한 사람, 센 사람 이런 걸로 이미지가 고착돼서 살아가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되게 못됐고 세고 독설하고 막 이런 사람으로 항상 오해를 받아요. 지금도 사람들이 그렇게 볼 거예요."
-'당연하지' 하차 후엔 배우 활동도 하셨죠?
"네 근데 이미지 때문에 드라마 할 때 맡은 역할이 '된장녀' '깍쟁이' 같은 역할이었어요. 저는 평범한 주부 역할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이지현 님이 생각할 때 본인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저요? 저는 씩씩한 사람 같아요. 그리고 정말 애들을 사랑하는 애들바보예요. 애들바보.(웃음)"
이혼 아픔을 경험한 이지현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안 하겠지만 문제는 애들이 없으니까 돌아가기 싫어요. 지금이 좋아요."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밤에 아이들과 자기 전이요. 아이들이 항상 자기 전에 말랑말랑해져 있어요. 싸울 때도 많은데 자기 전에는 서로 웃으면서 잠들어요. 둘 다 '엄마 안아줘' 할 때 너무 행복해요."
이지현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며 급하게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건을 찾고 있는데 없다고 하는 거 같았다.
"우경아, 엄마가 서랍에 놔뒀으니까 잘 찾아봐. 거기 있을 거야."
아들과 통화하는 이지현을 보고 있으니 연예인이 아닌 이웃집 엄마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