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 송전탑 설치 반대 집회에 아파트 주민들 몸살
경찰 "평온한 삶 보장도 중요, 소음기준 세분화 필요"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어~야 어~야, 석 달째 확성기에서 퍼져 나오는 구슬픈 장송곡 소리에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있어요."
전남 나주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지척에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3일 나주경찰서에에 따르면 신안 해상풍력발전과 해남 태양광발전 345㎸ 송전선로 경유에 반대하는 '고압 송전철탑 건설 저지 함평군 대책위' 집회가 한전 나주 본사 앞에서 3개월째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대형 방송 차량을 동원한 집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전 본사 건물을 향해 장송곡 소리를 발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전 본사 직원들을 비롯한 도로 건너 아파트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장송곡 소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나주경찰서가 집회 주최 측과 협의를 통해 아파트 인근 소음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형 소음차단벽'을 세우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전 본사 고층 건물에 반사된 소리가 다시 인근 아파트로 퍼져 나가는 '메아리 현상' 때문에 소음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한 살배기 아이를 둔 주부 A씨는 "날씨가 궂은 날에는 장송곡 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려오고,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소음 때문에 창문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한 채 지냈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주민 불편 민원이 나주경찰서로 쇄도하고 있지만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로는 딱히 조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주민 대책위가 확성기 방송을 하는 집회 신고 지역은 한전 본사 남측 광장 일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직선거리 50m 이내에 있지만 신고 지역은 집시법상 '그 밖의 지역'으로 분류돼 소음 측정은 한전 본사 건물을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
집회 소음을 측정하는 기준은 크게 '등가소음도'와 '최고소음도'로 나뉜다.
한전 본사는 남측 광장 일대는 '그 밖의 지역'으로 구분돼 낮 시간대 등가소음도는 10분간 60dB(데시벨) 초과, 최고 소음도는 1시간 동안 세 차례 80dB을 초과하면 제재 대상이 된다.
이는 경찰이 소음 유지 명령을 내리는 기준으로 올해 8월 개정된 집시법을 적용해 그나마 5~10dB씩 하향 조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누려야 할 평온한 삶은 계속 침해받고 있다.
나주경찰서 관계자는 "헌법에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으나 모든 국민은 평온한 삶을 누려야 할 권리 또한 갖고 있기에 집시법 소음기준을 현실에 맞게 좀 더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혁신도시 조성 이후 한국전력 등 16개 공공기관이 입주한 나주혁신도시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민원 때문에 원정 집회가 연중 지속되고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월1일부터 11월29일까지 이뤄진 집회·시위는 346건에 5491명이 참여했다. 2024년은 같은 기간 296건에 9368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건수는 50(14%)회 줄었지만 인원은 3872명(7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