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 대표
춥다. 마음이 추운 건지, 날씨가 추운 건지, 을씨년스런 바람이 연신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 칼바람이 가슴까지 후비는 걸 보면 딱히 날씨 탓만도 아닌 듯하다.
매일 도배되는 대한민국의 정치 소식이 우리를 더욱 춥게 한다. 하루는 윤석열-김건희 파장으로, 하루는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국민들의 피로도가 말이 아니다. 적대적 공생관계다, 지난 대선 이후 고착화된 윤-이 비호감 구도의 틈바구니 속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어찌된 나라가 그 반대다. 민생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도 정치권은 도통 관심 밖이다. 그러니 이 아침 바람이 어찌 시리지 않겠는가.
중앙정치가 속수무책이라면 지역 정치권이라도 민심을 보듬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 얘기다. 총선이 끝난 지 8개월, 이쯤이면 지역 국회의원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도드라져야 할 시기이지만 안타깝게도 존재감이 없다는 우려가 먼저 나온다.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그렇고 지역의 민생 현장이나 현안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그들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다.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곤 이재명 대표 법정 출두 때 뒷자리 '병풍' 속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과연 지역의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지점이다.
광주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에 대한 우려는 사실 22대 총선 직후부터 제기돼 왔다. 전체 8명의 의원 중에 초선이 7명(87.5%)에 달한 현실 때문이다. 모든 게 선수(選數) 위주인 국회에서 초선의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그리 넓지 않다.
중앙부처에도 초선들의 말발은 잘 먹히지 않는다. 지난 21대 국회 당시 똑같은 초선 비율로 감수해야 했던 호남정치의 시행착오가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22대는 임기 초반 국회 상임위 배정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광주의 핵심 현안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지원할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가 뒤늦게 조정과정을 거쳐 안배됐다. 군공항 이전과 연관된 국회 국방위 소속은 여전히 자리가 없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공직선거법 재판이 발목을 잡는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현재 본인 또는 회계책임자가 재판에 계류 중인 광주지역 국회의원은 3명이다.
광주동남을 안도걸 의원과 북구갑 정준호 의원은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산구갑 박균택 의원의 경우 회계책임자가 선거비용 제한액을 초과 지출한 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를 놓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고되고 있는 데다 재판부는 선거사범 신속재판을 예고한 상태다. 당사자들은 좌불안석이다.
지역정가에선 재판 결과를 예측하는 호사가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뒤숭숭하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입살에 오르내린 일도 심심찮게 불거졌다. 광산구을 민형배 의원은 국감기간에 골프를 쳤다가 당 대표의 엄중경고와 함께 윤리심판원에 회부됐다.
그즈음은 영광·곡성군수 재선거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점으로 당 대표가 선거 현장을 직접 방문했을 정도였다. 광산구을 지역구 광주시의원은 영광 선거 지원활동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골프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결국 민 의원은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심려를 끼쳤다"며 사과했다.
지역 현안사업 챙기기도 눈에 띄는 게 있는지 의문이다. 대표적인 게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이다. 지난 10월 뒷짐만 지고 있던 지역 국회의원들을 향해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일갈 했다. "(군공항 이전 답보 사태와 관련해) 누구보다도 무책임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광주·전남의 국회의원들"이라며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것은 지역발전을 염원하는 민의를 심각하게 거스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부랴부랴 민주당 광주시당이 제역할을 다하겠다며 '군 공항 이전 협의를 위한 광주·전남 정치권 연석회의'를 개최했지만 전남지역 의원들의 불참으로 반쪽짜리에 그쳤다. 최근에 민주당 지도부가 군 공항 이전 협의를 위한 TF구성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반신반의다. 그동안 민주당이 호남을 어찌 대해 왔는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 당시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전남은 시스템 공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여의도에 입성했다면 뭔가 남달라야 한다는 건 불문가지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의 역할을 점수로 매긴다면 기대 이하다. 너무 이른 평가 아니냐고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영광.곡성군수 재선거 때 확연히 드러났듯이 지역 여론은 민주당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당 지지도가 버티는 것은 대안이 없어서이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 첨병은 지역 국회의원들이다. 민주당 독점구도의 폐해를 걱정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쓴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쌀쌀한 겨울의 초입, 민심을 녹여줄 정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