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 광주를 상징하는 진산은 무등산이다. 삼국시대, 무악으로 불렸던 산은 영겁의 세월을 묵묵히 지켰다.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역사도 말없이 감싸 안았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들녘에 솟은 달덩이처럼 넉넉하고 포근하다. '등급이나 차별이 없다'는 뜻의 무등 (無等). 부처의 절대평등의 깨달음이다. '반야심경'의 '무등등'에서다. 임진왜란·일제 강점기 때 의병이 많았던 '의향 광주'의 원천을 무등의 정기에서 찾는 이유다.
국난에 분연히 일어섰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 첫 의병은 광주 목사 권율로부터 발화됐다. 고경명 의병장은 두 아들과 금산성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김덕령·정충신·김태원·김원국·양상기 등도 빼 놓을 수 없다. 일부는 광주 사람들 가슴 속에 맥맥이 흐르는 등 삶 속에도 녹아있다. 훗날 이괄의 난을 평정했던 정충신(1576~1636년)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름 곧 도시' 금남로, 4번 큰 부침
광주는 거리로 기억되는 도시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 금남로는 그의 군호인 금남군에서 따왔다. 해방 이후인 1947년 8월 15일 이름이 붙었다. 그 간 4번의 큰 부침이 있었다. 전라남도청(1910년대)이 들어서고, 도로 개설 공사(20년대)가 시작되면서다. 근대화의 출발점이었다. 60년대 왕복 6차선으로의 확장은 최대 상권 형성의 발화점이었다. 혼수·예술의 거리, 은행가·서점가·극장가 등이 탄생한 것이다.
44년 전, 1980년엔 역사의 현장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옛 도청이 있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일빌딩 245, 민주화운동기록관 앞 길까지 금남로 1가는 상징적이다. 80년 5월 '그날'로 데려간다. 이 518m 구간에 광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이 공존한다. 미래 발전의 핵심 동력인 ACC가 대표적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부당한 국가폭력에 맞섰던 시민들을 위한 국가 주도 프로젝트가 추진됐기 때문이다. "예향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서다. 낙후도시의 대명사였던 광주가 '문화로 밥을 먹고 사는 도시'로 업그레이드 되는데, 핵심 인프라로 기대를 모았다. 민주평화교류원은 5월 27일 시민군이 계엄군과 마지막까지 싸웠던 곳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주요 시설들은 도청 건물보다 낮게 지어졌다.
2020년대, 세계 속 광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제적 관심을 끄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재난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체험하면서 교훈을 얻는 여행) 현장으로 부각되면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속 무대가 됐다. 광주 출신으로 국가나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문제 의식을 일관되게 다뤄 온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이야기다.
상무관은 추모공간이다. 5·18 당시 임시로 시신을 모셨던 장소다. 소설은 그 곳에서 일하다 숨진 소년이 주인공이다. 열여섯 살 동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스러졌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전일빌딩의 장소성은 특별하다. 금남로 1가 1번지에서 '금남로 245'로 바뀌었다. 사연이 있다. 이 건물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이 모두 245개였다. 2016∼201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현장 감식 결과다. 2019년엔 탄흔 25개가 추가됐다. 이듬해인 2020년 법원도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5·18 당시 '공론장'이었던 분수대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있는 기록관 등도 역사의 무게감을 더하는 곳이다.
도시 브랜드 마케팅, 디테일에 성패
도시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가 됐다. 광주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양궁인들의 축제의 장으로 모색되면서다. 11월 말, 주말 오후엔 KIA타이거즈의 V12(12번째 우승, 옛 해태 포함) 달성 기념 카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KIA 구단 측과 광주시는 현재 거리 퍼레이드 날짜와 노선 등을 최종 조율 중이다. 야구 커뮤니티와 블로그, 맘카페 등에는 퍼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내년 9월 세계양궁선수권대회도 주목받는다. 결승전이 ACC 앞 분수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옛 전남도청 별관, 즉 서쪽에서 과녁이 위치한 동쪽(하늘마당)으로 쏘는 구조다. 관람석은 분수대 뒤쪽에 마련된다. 경기를 보는 동안 5·18 역사 현장이 TV 중계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실시간 노출된다. 경기장을 ACC와 금남로 등 도심으로 확장한 덕분이다.
광주는 스포츠와 인연이 깊다. 2002년 월드컵 4강과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 신화를 이룬 곳이다. 광주 수영·양궁대회는 이들의 유산(레거시)이다. 도시 정체성과 브랜딩 맥락과 이들 대회의 무형적 유산을 지속적으로 계승·확장하려면 스토리의 서사 구조가 중요하다. 예컨대, '빛'(U대회)으로 발화된 광주 만의 고유성이 어머니의 품과 같은 무등산(수영대회)을 거쳐 금남로 일대(양궁대회)로 확산되는 구조다.
상징물은 대회를 규정한다. 슬로건과 엠블럼·마스코트만 봐도 개최도시의 브랜드와 대회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내년 대회 슬로건은 '평화의 울림(The Echo of Peace)'. 상징물은 브랜드 마케팅의 첫 단추다. 우선, 전 세계 양궁인들의 공동 가치는 물론 시대 상황에 맞는 정서적인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광주의 정체성과 대회 성격, 장소성 등이 효과적으로 연계돼야 새로운 브랜드 창출의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다. 금남로가 광주를 넘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희망을 주는 거리로 거듭날 수 있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도시 마케팅의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