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우리나라 자살사망자는 1만4천872명으로 전년보다 894명(6.4%) 늘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전년 대비 6.6% 높아져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평균 40.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자살은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이고, 50대에서도 2위다. 이 정도 규모라면 자살을 한 개인의 선택이나 특정 가족만의 불행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는 가족과 친구, 학교와 직장, 그리고 오래도록 상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지역공동체가 남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가구 구조도 지역사회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2022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4.1%, 2인 가구는 28.6%로 이미 62.7%에 이르렀고, 2052년에는 두 유형을 합쳐 전체 가구의 4분의 3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통합 이전 전남은 2025년 기준 고령자 1인 가구 비중이 16.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혼자 또는 둘이 산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을 뜻하지는 않지만,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 곁에서 변화를 알아차리고 도움을 권할 사람이 적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살펴야 할 대목이다. 가족이 알아서 돌보겠지, 힘들면 본인이 요청하겠지 하고 기다리는 방식만으로는 변화한 사회의 위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도 자살을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만이 아닌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로 보고, 보건의료뿐 아니라 교육·복지·고용·행정·언론과 지역공동체가 함께하는 다부문 접근을 강조한다. 실직, 경제적 곤란, 질병, 가족 갈등, 돌봄 부담, 고립이 여러 겹으로 쌓이는 과정에서 위기가 나타나는 만큼, “용기를 내서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발견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체계가 함께 있어야 한다.
정신간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이 문제는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대학생은 법적 성인이지만 학업과 취업, 경제적 부담, 관계의 변화를 동시에 감당하는 시기에 있다. 어려움은 상담실에서 분명한 언어로 드러나기보다 반복되는 결석이나 과제 수행의 급격한 저하, 친구들과의 거리 두기 같은 작은 변화로 먼저 나타나곤 한다. 교수가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는 없지만 “요즘 많이 힘들지는 않은가” 하고 먼저 물을 수는 있다. 그 짧은 질문이 학생에게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가 되고, 상담센터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이어지는 첫 연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상담·보건·학생지도·학사·기숙사 지원이 서로 연결되고, 교직원 모두가 위험신호를 발견했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아는 체계가 필요하다.
자살예방은 위기 발견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삶을 돌보는 일도 지역사회의 과제다. 필자는 자살유가족이 경험하는 ‘만성슬픔’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다. 이 슬픔은 장례 후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기일이나 명절뿐 아니라 함께 걷던 길, 익숙한 음악, 특정 계절이나 관련 뉴스처럼 고인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이 촉발요인이 되어 안정된 듯했던 슬픔과 죄책감이 다시 선명하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는 유가족이 회복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제는 잊고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그럴 때마다 다시 힘들 수 있다”고 이해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며, 위기 직후의 개입뿐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상담과 자조모임, 회복 프로그램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26년 7월 1일부터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가 기존 12개 시·도에서 전국 17개 모든 시·도로 확대된 것은 의미가 크다. 심리지원과 함께 법률·행정 처리, 일시 주거, 특수청소, 학자금과 복지서비스를 연계해 유가족의 부담을 줄였다. 다만 초기 지원이 장기적 회복을 보장하지는 않는 만큼 이후에도 정신건강과 일상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필요할 때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지역 단위 장기 지원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2026년 7월 1일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이 체계를 새롭게 설계할 기회다. 광주의 도심과 전남의 농어촌·도서지역은 정신건강 전문인력과 의료·상담 접근 여건이 서로 다르다. 행정구역을 합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지역 주민이든 위기 상황에서 같은 수준의 도움을 받도록 생명안전망을 통합해야 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자살예방센터, 의료기관, 경찰·소방, 복지기관과 대학이 공통된 위기 선별·의뢰·회송 기준을 마련하고, 전문기관이 부족한 지역에는 찾아가는 상담과 원격 전문자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행정통합의 성과는 명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는 곳과 관계없이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을 때 삶 속에서 확인될 것이다.
자살예방은 한 사람에게 더 강해지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말할 힘조차 잃은 사람의 변화를 먼저 알아차리고 도움을 요청한 뒤에도 혼자 두지 않으며,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남겨진 가족의 슬픔까지 오래 돌보는 일이다. 대학이 학생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이웃과 지역기관이 위기의 신호를 놓치지 않으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촘촘한 생명안전망을 만들어 간다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개인에게 용기를 요구하기 전에 공동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진정한 생명존중의 지역사회다.
김선희 송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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