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되면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더니, 뉴스만 틀면 청사 싸움에 의대 싸움뿐이네요. 우리 같은 시민들 이야기는 대체 언제 나오는 겁니까.”
통합 한 달을 맞은 지금, 많은 시민이 공감할 만한 현실이다. 2026년 7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초광역 행정 통합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닻을 올렸다. 전남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89.1%의 압도적 긍정 평가는, 지역 소멸의 위기 앞에서 ‘경제특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500만 시민의 절박함과 희망이 교차한 결과였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20조 원의 정부 지원금이라는 청사진도 분명 가슴 벅찬 미래다. 하지만 정작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통합의 변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시민의 삶의 질은 ‘내가 사는 곳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는가’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신뢰 위에서 시작되는 만큼, 지금의 갈등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통합의 비전이 시민의 체감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대한 비전의 이면에서 각 지역과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미시적 갈등이 곳곳에서 거친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시장과 행정부는 시정 전반에 걸쳐 ‘지역의 균형적 발전과 균형적 의사결정’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으로의 시설·인프라 쏠림을 우려하는 지역 시민들의 체감 온도는 사뭇 다르다. 현재 통합특별시가 겪고 있는 진통은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를 해치는’ 전형적인 딜레마 상황이다. 행정 구역의 물리적 경계는 허물어졌지만, 정치권과 각종 이익단체들은 여전히 과거의 좁은 경계 안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와 경제적 이익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주청사 배치, 국립의과대학 유치, 공무원 인사를 둘러싼 지역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다. 광주·무안(남악)·순천 3개 청사의 활용 방안을 두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고, 첫 공무원 인사는 지역 균형이 무너졌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전남 서부권과 동부권의 오랜 쟁점인 국립의과대학 유치 문제는 통합의 정신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의료취약지로서 당위성을 내세우는 목포권과, 인구 규모와 산업단지 의료수요를 강조하는 순천권의 대립은 이미 단순한 정책 경쟁을 넘어 지역의 자존심을 건 정치적 대립으로 비화했다. 급기야 정부 공모 시한을 놓쳐 “자칫 둘 다 잃을 수 있다”는 공멸의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이러한 제로섬(Zero-sum)식 ‘각자도생’은 막대한 행정 비용을 낭비하고 정책 결정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만든다.
이제는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해답이 바로 민형배 시장이 제1호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시민주권(市民主權)’의 실질적 구현과 협력이다. 민 시장이 강조하는 ‘시민주권정부’의 핵심은 명확하다. 시민을 단순한 행정의 수혜자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결정하며 평가하는 실질적인 주체로 격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갈등을 봉합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투명한 제도로 뒷받침하여 통합 행정의 신뢰 기반을 새로 쌓는 일이다.
이를 위해 첫째, 시장과 행정부는 ‘투명성과 권한 분산’이라는 시민주권의 원칙을 행정 현장에서 즉각 증명해야 한다. 밀실 인사나 정치적 타협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행정의 모든 회의와 자료를 전면 공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입지 선정, 청사 기능 배분, 인사 시스템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오해가 자랄 틈을 없애야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도 뿌리내릴 수 있다. 나아가 시민의 참여를 형식적 거수기로 전락시키지 않고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으로 보장하는 공론화 기구 등 절차적 제도를 강화하여,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의 공정성까지 담보해야 한다.
둘째, 지역 시민과 정치권, 이익단체 역시 근시안적인 기득권과 지역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진정한 시민주권은 내 지역, 내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무조건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공론의 장에 참여해 합의를 도출해 내는 성숙한 주체의식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이웃 지역이 아니라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위협이다.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려 대립하는 동안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미래 세대가 머물고 싶은 일자리와 시민이 누려야 할 수준 높은 행정서비스라는 본질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노력이 지속 가능하려면 행정과 정치권, 지역 이익단체, 시민사회가 ‘원팀(One Team)’으로 결속해야 한다. 시장의 하향식 선언이나 관 주도의 행정만으로는 이 복잡한 갈등을 풀 수 없다. 행정은 투명한 절차와 권한 분산으로 신뢰를 쌓고, 시민은 공론의 장에서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물리적 결합을 넘어선 진정한 ‘화학적 결합’이 완성된다.
통합특별시가 꿈꾸는 미래는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다. 청년 가구, 부부 가구, 자녀 동반 가구 등 다양한 삶의 형태에 맞춘 섬세한 생활 정책, 어느 지역에 살든 차별 없이 누리는 공정한 행정. 이 단단한 신뢰의 토대 위에 시민이 온전한 주인으로 서는 ‘시민주권’을 구현하고, 절차적 협력으로 지역공동체를 완성해 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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