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체류 희망 끊긴 미등록 이주아동들

강주비 기자
업데이트 2025.02.27. 16:56
■구제 끝, 사라진 희망
<상>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
3월 말 한시 구제책 종료
학업, 치료 기회 등 차단
정부 추산 미등록 3천여명
법무부 "연장 등 검토 중"
광주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이주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외국인 부모가 낳거나 모국에서 데려온 자녀들 가운데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부른다. 이 아이들 부모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보니 등록이 되지 않아 정확한 집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서류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기본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정부는 지난 2022년 한시적으로 구제책을 도입했지만 효과가 미미하고, 이마저도 다음 달이면 종료된다. 이렇다 할 후속 대책이 없다보니 이 아이들은 4월부터 언제든 추방될 수 있는 처지에 몰렸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실태와 대책을 두차례에 걸쳐 분석해 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본인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요. 말도 통하지 않는 필리핀으로 돌아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거예요."

11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마리아(가명·35)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리아씨는 결혼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혼하면서 결혼이민비자(F-6)를 잃었고, 이후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그가 이혼 후 낳은 딸 이지영(가명·6)양 또한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분류돼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지영양은 미등록 신분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모든 아동이 받을 수 있는 유아학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어린이집 수업료를 전액 부담해야 했고, 건강보험 혜택이 없어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고열이 나거나 알러지 증상이 심해져도 입원은커녕, 비상약으로 버티는 일이 많았다.

마리아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매달 어린이집 비용과 병원비가 큰 부담이다. 부모로서 지영이에게 미안한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지영양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비자가 없어도 학교에 다닐 수는 있지만, 교육비 지원이나 각종 행사 참여 등 기본적인 사회·교육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법무부는 지영양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해 지난 2021년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시행했다.

국내에서 태어나거나 영·유아기에 입국해 6년 이상 체류한 아동에게 학업을 위한 체류비자(D-4)를 부여하는 제도다. 부모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범칙금 감면 조치도 함께 적용하며,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국내 체류를 허용한다.

마리아씨는 지영양도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해당 대책이 올해 3월 말 종료될 예정이어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마리아씨는 "수천만원의 범칙금을 감당할 여력도 없고, 어린 딸을 두고 혼자 필리핀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막막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필리핀 국적의 소피아(가명·40) 씨와 딸 제시카(가명·10)양도 같은 상황이다. 제시카양은 한국에서 태어나 학교까지 다니고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소피아씨는 법무부의 구제책이 발표됐을 때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곧장 외국인출입국사무소로 향해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천만원에 달하는 범칙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에 선뜻 신청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범칙금을 감면해 줬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래도 제시카를 위해 꾸준히 범칙금을 모으고 있었는데, 제도가 종료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스러웠다"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제시카양은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제 그 꿈은 '임시 제도'라는 한계에 의해 가로막히게 됐다.

소피아씨는 "제시카의 동생도 내년에 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두 아이가 한국의 또래 친구들과 동등한 교육 기회와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3천여명으로 추산된다. 미취학, 학교 밖 아동 등을 포함하면 1~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제 제도의 연장 여부나 추가 대책은 아직 불투명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제도 연장이나 상시화 여부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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