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았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이 참사를 과거의 비극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것이 멈춰 있다. 애도조차 충분하지 못했다. 때로 가로막혔고, 때로는 왜곡됐고 심지어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들이 마음으로 지켜온 애도를 넘어, 책임을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다. 12년의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완결시켜 가야 한다.
참사는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었다. 구조 실패와 지휘 혼선, 무책임한 대응, 결정적으로는 국가의 존재가 붕괴된 사태였다. 국민들의 줄기찬 요구에 이후 대책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정비되고, 조직도 개편됐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하다. 그 변화가 실질적인가, 실제로 작동하는가. 위기 앞에 국가는 지금, 국민 생명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문제는 ‘기억’이 제도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12년 동안 사회는 ‘기억하라’는 언어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그 기억은 충분한 애도의 기반 위에서 축적되기보다, 설상가상 갈등과 소모 속에 흔들려 왔다. 대명천지에 희생자와 유가족을 공격하는 무리가 등장하고, 공권력이 방조하는 방식으로 지지해온 참담한 시간들을 어찌 잊겠는가. 애도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할 때, 기억은 힘을 잃는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슬픔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왜 국가가 실패했는지를 끝까지 묻고 그 책임을 구조로 고정하는 일이어야 했다.
더욱이 참사는 끝없이 재생, 반복되고 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다. 초기 대응의 혼선, 책임의 분산,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진상 규명. 이는 개별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안전을 약속하는 듯했지만 실제로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국가는 여전히 부족하다.
세월호 이후 12년, 국가의 시간은 흘러나갔다. 그 너머에서 유가족의 시간은 멈춰 있다. 이 간극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국가는 왜 그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는가. 왜 책임은 끝내 제도 속에,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는가.
12년 동안 부유하던 세월호가 다시 호명되고 있다. 추모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가 더 이상 방해받지 않도록, 그 위에서 책임을 현재로 호출하기 위해서다. 세월호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다.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구조화하는 현재다. 이재명 정부에서 세월호를 아프지만 따듯하게 보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