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한 A군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탱크데이”라고 외친 B군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는지 몰랐다고 적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박수민 의원실에 제출한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36명의 경위서(중앙일보)에 따르면, ‘몰랐다’가 다수다. 그런데 C군은 ‘경기 중반쯤에 ‘스타벅스 빵야’ 구호가 나와서 애들한테 스타벅스가 갑자기 왜 나오냐고 물었다’면서 ‘5·18 광주에 대한 것이라고 해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경위서 기록처럼 스타벅스가 광주를 악의적으로 조롱한 사실을 아는 또는 모르는 학생이 섞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호가 2회부터 나왔다고 하고, 회를 거듭하면서 ‘스타벅스 가야지’-‘탱크데이’-‘빵야’, 이렇게 총소리까지 가는데 계속 모를 수는 없어 보인다. 물론 끝까지 모르고 그냥 따라 하기만 했을 수도 있다. 알고 모르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생각하지 않음, 생각의 멈춤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 실험실. 평범한 시민들이 한 사람씩 실험실로 들어온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권위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당신은 교사 역할이다. 옆방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해 달라” 스위치에는 15~450V까지 전압을 표시한 수치와 ‘심각’ ‘위험’ ‘XX’ 등의 경고 문구도 적혀 있었다.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버튼을 누르도록 했다. 계속 틀리면 전압이 계속 높아진다. 옆방에서 비명과 벽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만하라’는 절규가 이어졌다. 교사 역할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몇몇은 주저하며 손을 떼려 했다. 그때마다 연구자는 “실험을 위해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지시했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최고 450V를 누른 참가자는 몇이나 될까? 물론 실제 전기충격은 없었다. 옆방 학생 역할은 배우들이 했고 비명도 연기였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1961년 예일대에서 한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다. 시작할 때, 최고 450V까지 버튼을 누를 사람은 극소수(1~3%)일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학생의 비명과 고통을 들으면서 450V 버튼을 누른 사람은 참가자의 65%에 달했다. 교사 역할 참가자들은 식은땀을 흘리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보였다. 그러나 고민은 했지만, 연구자의 지시를 따르면서 끝내 멈추지 않았다. ‘권위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다. 밀그램 실험은 잔인함의 증명이 아니다. 훨씬 불편한 사실을 보여준다.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평범한 사람이 권위와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판단을 남에게 맡긴다는 사실?이었다. 이 실험이 훗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그를 괴물이라기보다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악마 같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일을 포기한 사람이었다. 아렌트는 악의 뿌리를 ‘사유하지 않음(thoughtlessness)’에서 찾았다.
‘중오지 필찰언(衆惡之 必察焉), 중호지 필찰언(衆好之 必察焉)’, 여러 사람이 아무개를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보고, 여러 사람이 아무개를 좋아해도 자세히 살펴보라, ‘논어’에 나온다. ‘찰(察)’이 중요하다. 그냥 믿지 말고 살펴보라는 이 말은, 시비(是非)의 판단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하라는 뜻이다. 다중이 의견이 옳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선악의 판단은 다중의 몫이 아니라 자기 몫이다. 맹자는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악인이지만, 맹자는 ‘분별하지 않는 자’가 악인이라고 했다. 지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是非之心)에서 출발한다. 잘 배워 많이 아는 것은 지식이고, 시비를 널리 헤아리는 것은 지혜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지만, 지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고등학생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민으로 자라가는 시기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때 “왜?”라고 물어야 할 나이다. 남들이 웃는다고 함께 웃고, 남들이 조롱한다고 따라 할 때, ‘나’는 없다. 사람은 악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멈출 때 가장 위험해진다.
사과하고 용서하고, 기왕지사 흘러간 일을 들추는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배재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못 배운 뭔가를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인데, 그것은 ‘가해자’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생각을 멈춘 가해자였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뚜렷이 새긴다면, 그리하여 다시 A군이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할 때 C군처럼 “왜?”라고 묻는다면, 광주일고 학생들이 재차 용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배재고 학생들이 스타벅스에 발길을 끊는 일부터 시작하기를, 사족으로 달아둔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