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잡학카페
어린이는 자연이라는 오래된 교과서의 페이지를 손끝으로 넘기며, 돌과 모래, 나뭇가지를 이용해 생각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키우며 성장해 왔다. 그들이 놀이를 통해 펼친 손짓 하나하나는 마음속 도서관을 채우는 기억의 설계도가 됐고, 인류의 뇌는 그러한 오래된 놀이의 프로그램을 여전히 기억하며 진화해 오고 있다. 인간은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상상력의 불꽃을 지피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원시적인 놀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활동이자 곧 진화의 과정이다. 문명은 자연과의 감각적인 교류의 기억에서 시작됐으며, 손과 도구를 통한 창조의 형성 과정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이라는 연산적 타자에 먼저 접촉하게 되면서 타율적인 인지능력을 갖게 됐다.
현대의 아이들이 타자의 시선으로 짜인 코드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손끝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세계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다. 자라나야 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창의성의 나무는 뿌리를 잃은 채 길들여짐에 기대어 점차 휘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어린이들은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접촉 놀이가 사라진 채, 화면 속 가상의 세계를 터치 한 번으로 접속하며 놀이한다. 사물이 사라지고 기억도 사라진 오늘날, 사물 접촉 놀이는 더 이상 일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과거의 원시 놀이가 돼버렸다.
창의적 사고의 핵심은 단지 지능이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비롯된다. 기억은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감각은 알아차림이라는 예민성을 일으킨다. 창의적 사고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은 이러한 감각에서 오며, 이는 모두 축적된 기억 속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물과의 놀이를 통해 풍부하게 기억을 축적해 온 사람일수록 창의성이 더욱 쉽게 발현된다.
예를 들어, 노벨상을 수상하고 대중 강연자로도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 Feynman),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소설을 쓰던 중 20년 만에 수학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등 다양한 과학자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놀이 기억에서 창의력의 뿌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세상을 '재미있는 퍼즐'처럼 바라보며 과학을 탐구했고, 이는 바로 어린 시절 놀이의 기억 덕분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강과 샛별처럼 등장한 한국계 소설가 김주혜,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 역시 어린 시절의 감각적 놀이에서 창작의 뿌리를 찾았다. 그러나 오늘날, 원시적 놀이가 사라진 자리에 AI와 스마트폰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콘텐츠가 아닌 남이 제작한 콘텐츠에 '자발적 복종'으로 길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21세기 초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깊은 연결망에 접속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AI와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고, 연결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삶이 됐다. 이러한 접속은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점점 더 '길들여진 존재'로 퇴화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길들여짐이 외부로부터 강제된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복종'이라는 점이다.
인간과 공진화하는 기계는 과거에는 손과 발의 기능을 대신해 왔으나, 이제는 뇌의 고유한 기능마저도 대체하려 한다. AI시대는 인간의 생각, 판단, 심지어 기억까지도 대신하게 됐다. 내비게이션이 사람들 머릿속의 지도를 지우고, 기계의 도움 없이 방향을 찾는 능력을 상실하게 한 것처럼, 이제는 인간이 기계를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길들이는 시대가 됐다. 더 나아가 디지털 문명은 인간이 만든 접속 기술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행동, 사고, 감정까지 조절하고 규정하게 됐다. 결국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아닌, '기술에 의해 정의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길들여진 사회이다.
이러한 '자발적 복종의 길들여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원이라는 제도화된 놀이가 아닌, 땅에서 사물과 또래들과 함께 어우러져 노는 원시적 놀이의 회복이 필요하다. 또한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빠른 보상과 반복적인 자극에 의존하기보다는, 기억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교육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접속 기술이 인간의 주의력을 빼앗고 깊은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방해하는 지금, 우리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길들여짐을 넘어 '주체적 접촉'의 삶을 회복해야 할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손끝으로 직접 만지는 돌멩이, 나무, 종이, 펜 하나가 삶의 중심을 이루는 반면, 스마트폰 속 반짝이는 응답은 유리창 너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길들여짐에 자발적 복종하는 존재는 결국 노예일 뿐이며, 우리는 길들여짐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주인'이 돼야 한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