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전남대 유학생 안나(가명) 씨는 올여름 휴대전화로 폭염 재난문자를 수차례 받았다. 한국어에 능숙한 그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주변 외국인 유학생들의 반응은 늘 비슷했다. “무슨 뜻이냐”, “지금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거냐”며 매번 번역을 부탁했다.
#2.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광주에 머물고 있는 유세프(28)씨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는 “거의 매일 한국어로 긴 경보 문자가 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읽을 생각도 없이 그냥 넘긴다”고 말했다.
#3.베트남 국적 A(32) 씨는 지난해부터 전남광주 나주에서 농촌 계절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휴대전화로 문자가 와도 읽을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항상 물어봐야 했다”며 “더울 때 쉬라는 뜻인지, 계속 일하라는 뜻인지 몰라 그냥 일을 계속한 적도 있다. 내 언어로 안내가 오면 훨씬 안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난문자’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기후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촌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나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 주민들은 폭염 특보와 행동요령을 즉각 이해할 수 없어 보다 실효성 있는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재난문자와 지역 행동요령이 한글 중심으로 제공된다. 근로 현장에서 일부 다국어 교육자료를 제작·보급하고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체계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폭염에 따른 외국인 노동자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5일 해남에서는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밭에서 작업하던 태국 국적 30대 노동자 B씨가 어지럼증을 호소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지난 3일에는 나주의 한 태양광 시설 작업현장에서 예초 작업을 하던 중국 국적 40대 노동자 C씨가 열사병으로 추정되는 증세를 보여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C씨의 체온은 41.8도였다.
이에 단순한 홍보를 넘어 실효성 있는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에서는 서영미 의원(조국혁신당·비례대표)이 최근 ‘기후적응도시’ 전환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 의원이 제안한 기후적응도시 전략은 기존의 폭염 대응을 유지하면서도 주거와 노동, 외국인 안전, 물관리까지 정책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국인 노동자 분야에서는 입국 또는 고용 단계에서 국적과 선호 언어를 등록한 뒤 폭염특보가 발령되게끔 하는 정책도 담겼다. 영어·베트남어·태국어 등 자국 또는 선호 언어로 맞춤형 재난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또 긴 문장 대신 작업중지, 물 섭취, 휴식, 119 신고 등 핵심 행동요령을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안내하고, 인공지능(AI) 번역기술을 활용해 언어 장벽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서 의원은 “AI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만큼 외국인이 입국할 때 선호 언어를 등록해 그 언어로 재난정보를 제공하거나 그림 중심의 안내를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재난문자는 보내는 것보다 상대방이 실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회기가 시작되는 다음달부터 관련 조례 발의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혁신당도 이를 민생 1호 의제로 검토하고 있는 만큼 당 차원의 논의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사회적 재난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행정도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 정책이 온열질환 발생 이후 대응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언어와 주거환경, 노동환경 등 취약성을 미리 보완하는 ‘기후적응’ 중심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김선희 송원대 간호학과 교수는 “재난문자를 여러 언어로 일괄 발송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카카오톡 알림톡 등 다국어 긴급재난 알림 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며 “현재 경찰청 등 일부 기관에서 운영 중인 다국어 재난서비스를 지자체와 연계하면 외국인 주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농촌이나 산업현장에는 폭염 위험도를 색상으로 표시한 깃발을 설치하고 QR코드를 통해 행동요령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이라며 “폭염 취약지역을 순회하는 이동 건강검진 버스를 운영해 혈압과 체온, 초기 온열질환 증상을 점검하는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찬기자 juve5836@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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