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진도항(옛 팽목항)과 광주 도심에서는 희생자들을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조용한 추모가 이어졌다.
15일 무등일보 취재진이 방문한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 봄이 찾아왔지만 쌀쌀한 바닷바람은 여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난간에 매달린 노란 리본이 바스락거리며 나부꼈다. 색이 바래고 끝이 헤진 깃발은 야속한 세월을 보여주는 듯했다.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다, 그리고 그 위에 겹쳐진 2014년 4월16일의 시간은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진도항에 배를 타러 온 사람들은 자연스레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구 곳곳에는 여전히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형 노란 리본 조형물 앞에는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를 노란 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빨간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 끝에 닿는다. 그 길에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이 남긴 그림 타일 4천600여 점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툴게 적힌 아이의 손 글씨부터 정성껏 그린 그림까지, 타일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타일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살짝 어루만지기도 했다. 맞은편에는 “세월호 참사 대통령 기록물 및 국정원, 군 비공개 자료 공개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거칠게 흔들렸다.
304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 벤치 앞에서는 이름 하나하나를 눈으로 더듬던 이들이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인근 팽목기억관에도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내부에 들어서자, 향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입구에 놓인 공책 방명록에는 “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며, 기억은 국민의 의무입니다”, “기억력이 몹시 나쁜 나이지만,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이 납니다”, “참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 자리에서 애쓰겠습니다” 등의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미안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기록들이었다.
작은 분향소 앞에는 붉은 세뱃돈 봉투와 쌀 10kg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의 조용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 뒤 벽면에는 시간이 멈춘 아이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조용히,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광주에서 온 40대 나모씨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살아있다면 올해 서른이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나이인데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더 슬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 50대 박춘성씨는 “최근에도 신안에서 여객선 좌초 사고가 나지 않았느냐.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떠올렸을 것”이라며 “이렇게 큰 희생을 겪고도 여전히 안전불감증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에서 온 30대 이윤하(38)씨는 “10주기 때도 왔고 이번에도 다시 찾았다. 세월호 참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국가적 트라우마”라며 “4월16일이 다가오면 SNS에서 관련 영상이 다시 뜨는데, 여전히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도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설치된 세월호 참사 12주기 시민분향소에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시민들의 조용한 방문이 계속됐다. 노란 배경 위에 빼곡히 걸린 304명의 희생자 사진 앞에서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방문객들은 분향소에 마련된 종이에 추모 메시지를 남기거나, 노란 리본에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적어 걸어두기도 했다.

분향소에는 하루 평균 200여명의 시민이 찾고 있으며, 이날 오전 11시 기준 1천여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찾은 방문객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었다.
전북에서 온 김모(31)씨는 “4월이 되면 문득 세월호가 떠오른다”며 “5월을 앞두고 참사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광주에 온 김에 분향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50대 방문객은 “자녀 생일이 4월16일이라 이 시기가 되면 당시 모습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매년 찾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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