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 생활을 위해 목포에서 광주로 올라온 김모(21·여)씨는 최근 부동산 중개플랫폼에서 월셋방을 찾다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비만 대주면 자취 비용은 스스로 해결했다고 큰 소리를 쳤던 김씨는 당장 형편을 고려해 월 20만원대의 원룸을 찾았다. 하지만 원룸 월세를 제외하고도 매달 관리비로 6~10만원을 지출해야 했다. 사실상 월세가 명시된 금액보다 높아지는 셈이다. 김씨는 "기숙사 생활 대신 자취를 하고 싶은데 방 한 칸짜리 원룸 관리비가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2. 직장 생활 2년 차인 박모(27)씨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학생 때부터 쭉 살아온 원룸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비교적 월세와 전세가 저렴한 오피스텔을 찾아봤지만 관리비는 10~15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관리비 10만원짜리 방을 계약해도 전기·수도세는 물론 음식물마저 스티커를 사서 별도로 배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가스요금도 10만원 가까이 나왔는데 이사를 하고 싶어도 막막하기만 하다"며 "관리비가 어디에 쓰이는지 집주인에게 묻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의 저렴한 월세 시세에 혹했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결코 싸지 않은 공동 관리비를 지불하는 사회초년생과 자취생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 2021년 6월 임대차 3법이 시행 이후 이같은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전월세 신고제'는 보증금 6천만원 이상 월세 3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30일내에 계약 내용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관리비는 임대인의 수익이 아닌 건물 관리·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간주해 신고 항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월세를 낮추고 관리비를 올리는 꼼수가 횡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저렴한 월세를 구입하려는 이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사회초년생 또는 자취생, 신혼부부 등인 만큼 '집주인의 관리비 꼼수'를 피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0일 광주·전남 대표 부동산 플랫폼인 사랑방부동산을 비롯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올라온 광주지역 거래 가능 매물을 살펴본 결과, 보증금과 임대료를 신고 범위 이하로 설정하고 관리비를 비싸게 받는 매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같은 매물들 대부분 승강기 유지비와 수선유지비, 인터넷 등을 관리비 사용 항목으로 공개하고 있었다. 전기·도시가스 사용료를 비롯한 사용료는 별도 금액으로 부과되는 항목에 포함됐다. 부대시설로 승강기와 주차장이 없는데도 관리비가 10만원인 매물들도 눈에 띄었다.
전월세 신고제를 피해가고자 월세를 30만원 이하로 설정하고 그 차액을 관리비로 전가하는 이른바 '꼼수 행위'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3조 4항을 보면 '공동주택 관리주체는 입주자에게 유지관리를 위해 필요한 관리비를 게시판이나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원룸의 경우 공동주택이 아니라 단독·다가구주택에 해당돼 아무런 제도적인 제한이 없는 상황이다.
국토연구원의 조사에도 전국에서 '깜깜이 관리비'를 내는 가구가 439만6천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임대료를 관리비로 넘기는 경우 임대소득세 대상에서 제외돼 집주인은 건강보험료 회피 등 탈세가 가능하다. 더욱이 세입자 입장에서 관리비는 연말정산에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는 만큼 관리비 지출이 클 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원룸의 경우 상주하는 경비원도 없는데 관리비가 많이 들 필요가 없다', '실질적으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등 관리비가 사실상 '제2의 월세'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세입자들의 푸념이다.
과도한 관리비로부터 세입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허점투성이다.
관리비가 과도하게 부과되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임대인이 분쟁 조정에 참여해야만 조정이 가능하다. 국민 주거 생활의 안정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도 관리비에 대한 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임대인의 '꼼수'를 막기 위한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원룸이나 다가구주택 등의 관리비 사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광주지역 한 부동산중개 전문가는 "관리비는 실사용 금액에 근거해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현행법 상 사각지대에 놓인 단독·다가구주택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임대인에 의한 관리비 부과를 제도화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관리비 규정을 신설해 관리비 부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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