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늘이 높아졌다. 고개와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그 사이로 하얀 뭉게구름들이 수를 놓는다. 하늘에서 선선한 바람이 내려와 볼을 파고든다. 사납던 햇살은 너그러워졌고 열기는 선선함으로 식어간다.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들녘을 가르며 사방으로 퍼진다. 어느새 벼가 노란 물결을 이루며 파도를 친다. 오곡도 결실을 맺으며 수확을 재촉한다.
농부들의 얼굴은 함박웃음으로 가득하다. 온누리 가득한 가을이 여름을 저만치 밀어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혹독했다. 집을 나서면 이마 아래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옷이 어느새 젖은 빨래가 됐다.
여름 해는 잔인했지만 결실을 맺는 힘과 양분을 줬다. 사과와 배, 청포도도 커다란 멍울을 머금었다.
모든 것이 여름 덕분이다. 언제 끝나나 싶었던 더위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한다.
학창 시절 가을이면 ‘추수 봉사’에 나섰다. 수확 인력이 부족해 학생들을 동원하던 시절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집에서 자란 필자는 벼를 베는 낫을 잘 다루지 못했다. 벼를 잡고 베다 손을 베기도 일쑤였다.
지금까지 남은 흉터는 그 시절의 아련한 훈장이다. 지금이야 기계 등 장비가 좋아졌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어서 일손 걱정은 하지 않으니 격세지감이다. 해마다 남도 들녘의 익어가는 벼를 보노라면 그때의 풍경들이 기억 속에서 살아나온다.
우리가 누리는 가을의 성찬과 행복은 보이지 않는 모든 이들의 덕분이다. 여름 내내 땡볕 아래서 땀 흘린 농부들과 건조 후 도정작업을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더해진다.
장성 과수원에서는 가을 품종인 사과 홍로가 빨간 자태를 드러낸다. 나주 과수원에서는 배가 주렁주렁 열려 상자로 들어간다. 유난히 빠른 추석명절 탓인지 모두의 마음이 바쁘다.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로 소식을 전해오는 친지들의 목소리가 반갑다.
전자우편 대신 편지를 쓰던 어느 가을의 기억도 떠오른다. 먼 곳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만날 날을 기약하던 때도 있었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던 추억을 되살리진 못해도 마음 속에‘가을편지’하나를 건네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제 가을이다.
최민석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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