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2026년 김구의 해

최민석 기자
업데이트 2026.09.06. 14:41

백범 김구(1876∼ 1949) 선생은 한평생 그 누구보다 바빴다. 평생을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말 그대로 그의 삶은 종횡무진이었다.

백범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국권 회복 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자나깨나 나라를 되찾는 일에만 몰두했다. 임정을 기반으로 활동했지만 그 틀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외교·군사활동 뿐 아니라 직접적 항쟁과 무장 투쟁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했다.

그가 임정 밖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1930년대 어려운 독립운동 여건에서 비롯됐다. 만주사변으로 중국 내 활동이 팍팍해진데다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을 이끌고자 하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이중 한인애국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희생이 눈물겨웠다.

특히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는 한국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백범은 윤봉길 등 독립 투사들이 사지로 떠날 때마다 무겁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이들을 사지로 보낸 현실과 지신에 대한 미움이 그를 괴롭혔다.

백범은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 연합군과 함께 국내 진입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가 국내 진입작전을 준비했던 것은 해방 이후 우려된 미국 등 강대국의 한국 문제 개입 때문이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남북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군정 실시로 고착화됐다.

백범은 38선을 넘나들며 단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그의 고군분투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암살로 생을 마쳤다. 올해는 백범 탄생 150주년이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총회에서 올해를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

그의 평화 사상을 전 세계가 공유하자는 취지다. 백범은 “자신의 소원은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고 말했다. 남북은 여전히 총부리를 겨누고 있고 자주독립은 숙원이 됐다. 백범은 세상에 없지만 그의 사상과 외침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최민석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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