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탄소와 물가를 잡기 위해 도입한 교통티켓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으며 여러 나라로 빠르게 확산됐다. 짧은 기간 교통복지와 탄소배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막대한 예산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전쟁으로 시작된 獨 교통티켓
독일 교통티켓의 출발은 '9유로 티켓'이었다.
지난 2022년 6월부터 8월까지 한 달에 9유로(약 1만3천원)로 독일 대부분 지역의 근거리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무제한 대중교통 정기권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 상승과 에너지 요금 폭등에 대응하고자 독일 정부가 한시적으로 시행한 정책이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5천290만장이 판매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독일운송회사협회(VDV)와 독일철도(DB) 설문조사 결과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했으며 9유로 티켓 사용기간 시군 단위 지역에서 2019년 대비 철도 이용률이 1.5배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온실가스 180만t 저감(3개월), 교통혼잡 개선과 물가상승률 0.7% 감소 효과를 달성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동권 강화, 탄소배출 등에 대한 대응으로 교통복지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의 대중교통 요금지원 정책은 한시적이었지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VDV조사 결과 9유로 티켓 사용자의 88%가 '만족스럽다'고 답했고, 39%는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 티켓을 구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중교통 공공성 강화
'9유로 티켓'으로 촉발된 독일의 대중교통 실험은 이듬해 'D(도이칠란드) 티켓'을 탄생시켰다.
상대적으로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독일은 오래전부터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월정액권 요금제나 무상대중교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돼왔다.
계속되는 전쟁에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독일 내부에서는 유가 보조금을 지급해야하는 의견과 화석연료에 재정지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충돌하며 논쟁이 붙었다.
그 결과 도입된 것이 바로 D티켓이다. 앞서 9유로 티켓으로 효과를 경험한 독일 정부는 49유로로 한달 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D티켓을 지난해 5월 도입했다. 가계 부담을 경감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다.
D티켓을 구입하면 독일 전국 근거리 대중교통 수단은 물론 일부 구간은 페리까지 이용할 수 있다. 근거리 대중교통은 총 이동거리가 50㎞를 초과하지 않거나, 총 이동시간이 1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를 뜻한다.
독일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도심의 주요 지점과 다른 도시를 잇는 광역급행철도(RE·RB), 도시 내부 주요 지점을 순환하는 광역철도(S-Bahn)와 지하철(U-Bahn) 그리고 노면전차인 트램과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을 오가는 버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D티켓을 구입하면 대부분의 대중교통과 페리 일부 구간까지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고속철과 고속(플렉스)버스, 1등석은 이용할 수 없다.
베를린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트램 1회 탑승권은 3.2유로(약 4400원)로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할 경우 하루에 최소 6.4유로(약 8천800원)이 든다. 5일만 이용해도 32유로(약 8만3천원)으로, 한달 정기권은 60유로(약 8만3천원)였으며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했다. 하지만 D티켓 하나면 한 달 동안 베를린은 물론 무제한으로 전국에서 이용할 수 있어 효용가치가 높았다.
이때문에 D티켓 판매가 시작된 지난해 5월1일,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티켓 구매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독일 철도 서버는 오전 10시부터 다운돼서 오후 6시까지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D티켓은 도입 3개월 만에 1천100만장이 판매됐으며 현재도 1천300만명 정도가 이용하며 안착에 성공했다. 또 올해 상반기 버스·기차 승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D티켓은 출퇴근용으로도 장려되고 있다. 고용주가 티켓 가격의 25% 이상을 부담해 직원들에게 제공할 경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5%를 할인해주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했던 9유로 티켓과 달리 D티켓은 디지털기기로만 사용가능하다.
◆쏟아지는 예산에 '진퇴양난'
교통복지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도입된 D티켓은 특히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적인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독일 내 교통 수단 사용 패턴을 변화시키고,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지속 가능한 교통 정책의 좋은 사례라는 평가다.
베를린 소재 기후 연구소 MCC가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D티켓 도입 후 30㎞ 이상 기차여행은 30.4% 증가한 반면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는 7.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5월 D티켓 도입 후 1년 동안 독일 내 이동 데이터와 유럽 8개국의 비교 데이터를 분석한 수치다. 도로에서 철도로의 교통량 이동이 이루어졌으며, 30㎞ 이상 모든 노선에서 기차여행 비율이 10%에서 12%로 증가했다.
대기질 개선에도 영향을 미쳐 D티켓 도입 첫 해 670만t의 탄소배출 절감 효과도 거뒀으며 이는 총 운송 배출량의 4.7%가 감소한 수치다.
이같은 성과에도 내년 4월30일까지로 예정된 D티켓의 지속가능 여부는 불투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재정부담이다.
D티켓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연간 15억 유로(약 2조2천300억원)씩 총 30억유로(약 4조4천6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운수업체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그러나 실제 운영 결과 연간 11억 유로(약 1조6천3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자 그 적자폭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격 인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정부 주도의 가격 인상이 수차례 무산됐지만, 결국 지난 9월23일 가격 인상이 최종 결정됐다. 막대한 재정압박에 따른 것으로 내년 1월1일부터 적용될 D티켓 요금은 58유로다.
기후연구소MCC는 가격 인상으로 기차 여행이 14% 감소하고, 자동차 이동 거리가 3.5%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탄소배출 절감량도 360만t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D티켓으로 드러난 지역간 격차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발달된 대도시일수록 D티켓이 유리한 반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열악한 농촌마을과 소도시의 경우 혜택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간 또다른 차별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에 기댄 정치적 선택도 등장했다.
올해 7월 부활한 베를린 티켓이다. 9유로 티켓 단종 후 2022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 29유로에 판매됐던 베를린 티켓은 D티켓의 등장으로 중단됐다 선거 공약으로 다시 판매가 시작됐다. 과거 월정기권에서 연간 정액권으로 D티켓과 차별화를 내세웠지만 결국 재정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18일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D티켓이 '값비싼 실패'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과 함께 지속가능 여부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독일 베를린=이윤주기자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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