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사이에 자리한 룩셈부르크는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다. 도시에 밀집된 인구와 인근 국가에서 출퇴근하는 차량까지 교통난이 심화되자 정부 주도로 추진된 정책이다. 탄소배출에 민감한 유럽의 정서도 한 몫했다. 대중교통 무료화를 통해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기후변화에도 대응하겠다는 목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급증하는 인구·車 혼잡한 도시
중부 유럽 서쪽에 자리한 룩셈부르크는 2천586㎢ 면적에 인구 66만2천명이 살아가는 작은 나라다. 국제 금융 중심지인 이곳은 1인당 GDP 13만1천384달러로 세계 1위의 부국이다.
좁은 국토 면적에 산간지대가 많은 룩셈부르크는 인구 92%가 도시에 밀집해 살고 있으며, 압도적인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인구증가율(1997~2017)은 40%를 넘어섰으며, 최근 8년간 10만명이 증가하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인구증가율이 5%를 조금 웃도는 유럽 평균에 비해 8배 가량 많은 수치며, 제자리걸음인 독일이나 10%대에 불과한 이웃 프랑스·벨기에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지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가 21만명에 달해 도심은 교통체증으로 늘 혼잡한 상황이다.
특히 높은 경제력으로 자동차 보유율이 30여년 간 유럽내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다. 2020년 기준 인구 1천명당 696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10가구 중 9가구가 자동차를, 10가구 중 1가구는 3대 이상 소유하고 있다.
낮은 유류세와 자동차 위주의 도로 인프라 등도 도로 혼잡을 야기시키는데 한몫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작은 마을에도 페라리와 마세라티 대리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이며, 수도인 룩셈부르크시는 전역이 주차장을 방불케한다. 오는 2030년에는 인구가 69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돼 교통대책이 요구됐다.
◆정부 차원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
룩셈부르크가 꺼내든 카드는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였다.
2010년대 초반부터 대중교통 활성화 정책에 관심을 가져온 룩셈부르크는 'M ODU 2.0(mobilite durable, 지속 가능한 이동성 전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0년 3월 1일부터 대중교통의 전면 무료화를 단행했다. 기차·버스·트램 등 대중교통에 대해 일등석을 제외하고 어디에서나 누구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소유와 운행을 줄이는 대신 이들을 대중교통으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를 통해 도로 혼잡과 대기오염을 해결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다.
'MODU2.0프로젝트'는 2017년을 기준으로 2025년까지 대중교통 이용률을 20% 이상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자동차에서 대중교통으로의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철도망 체계적 확대와 트램 노선 연장을 비롯해 자전거 인프라, 전기자동차 충전소 확충 등 도로 및 교통 인프라를 보완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도시 중심부의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우회로를 만들고 주차 공간을 두배로 확장하고, 전국 버스 노선망의 전면적 개편에 나섰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개별 차량은 61%에서 46%로 감소시키고, 여객 운송(19%→22%), 보행(6%→9%), 자전거이용률(2~4%)은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다.
현재 룩셈부르크 대중교통 무료화에 연간 투입되는 예산은 5억 유로에 달한다. 이중 유일한 수입권은 일등석 티켓 판매로 거둬들이는 4천100만 유로가 유일하다. 과거 교통시스템 유지관리비 및 요금 징수 및 무임승차 감시인력 등 각종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일부 재원을 확충했다.
2020년 12월 채택한 기후법에 발맞춰 2022년 4월에는 국가 이동성 계획인 PNM 2035를 발표하며 지속적인 대중교통 정책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PNM 2035는 MODU 2.0프로젝트의 보다 강화한 것으로 자동차, 버스, 기차, 전차, 자전거, 보행자 등 모든 종류의 이동성을 고려한다. 일명 'MODU 3.0'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계획은 누구나 쉽게 대중교통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2035년까지 개별 차량은 51%에서 31%로 감소시키고, 여객 운송(19%→22%), 대중교통(16%→22%) 보행(12%→14%), 자전거이용률(2%→11%)은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의 경우 2017년 하루 33만 2천 번 이용(16%)에서 2035년에는 29만4천번 추가 이용(89% 증가)할 수 있도록 해 전체적으로는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률이 22%에 이르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무료 교통에 긍정적이지만, 자동차 운행을 줄였다는 결과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다만 대중교통 무료화 후 시민 1인당 연간 500유로 정도의 교통비가 절약되는 것으로 집계됐으며 통근 시간도 자동차 운전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경 넘어 진화하는 무상대중교통
룩셈부르크의 대중교통 무료화는 국가간 경계를 넘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인접국에 거주하면서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에게까지 무료화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인접국 또는 인접국 지방자치단체들과 정책적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와는 도시 간 고속도로의 인프라 개선 및 철로 개설을 위한 투자, 카풀 정책 등이 호평을 받고 있다. 2022년 국경을 가로지르는 323번 버스에서 룩셈부르크의 무료 대중교통 정책을 확장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국경을 넘어 5㎞까지 무료 교통편을 연장해 티옹빌로 가는 버스를 운영했다. 또 국경 근처 6개의 프랑스 지자체와 협업해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하는 프랑스 근로자들 대상으로 무료 셔틀을 시범 운영중이다. 73만 유로가 투입되는 이 사업은 프랑스 6개 지역 통근자를 무료 셔틀로 몬도르프까지 이동시킨 후 도보로 국경을 넘어 룩셈부르크 몽도르프 레 뱅에서 무료 대중교통 네트워크를 이용해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오는 2030년까지 프랑스 메츠시와 룩셈부르크시 사이를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기차 서비스를 늘리는 것도 추진된다. 그동안 매일 12만 명 이상의 프랑스 근로자들이 룩셈부르크로 출퇴근해왔지만 두 나라를 잇는 교통편에 대한 비판은 끊이질 않아왔다.
독일 트리어 지역에서는 버스와 기차의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통근자들이 대중교통 이용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자를란트주와는 룩셈부르크로 오가는 9천여 명의 근로자들을 위한 직통 철도와 부족한 버스노선 확충을 위한 논의도 이어가고 있다. 또 국경지역을 특별관세구역으로 지정해 교통요금 제도를 서로 나눌 수 있는 방안과 도이칠란트티켓(일명 49유로 티켓)을 국경 간 서비스로 확장하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룩셈부르크 정부 관계자는 "자동차 소유나 운전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둬 강제하기 보다는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보다 많이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이윤주기자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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