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인민들에게 닥친 가장 큰 시련은 식량난이었다. 김일성의 고백에 따르면, 전국 100만 농가 중 36퍼센트가 수확기를 5∼6개월 앞두고 식량이 바닥나는 상황을 맞았다. 1955년께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2월에 이미 인민들의 식량이 떨어졌다"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우리 대부분은 '8월 종파사건'을 모른다. 어쩌다 그 이름을 들어본 이라도 '권력 장악을 둘러싼 북한의 계파 간 갈등'쯤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왜 벌어졌는지, 어떻게 전개되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깜깜하다. 북한사를 전공한 저자에 따르면 그 사건은 그저 흘려버릴 사소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1960년 4·19의거가 민주화 물꼬를 트면서 '대한민국'의 토대를 일궈냈듯, '8월 종파사건'은 오늘날 북한의 유일 체제가 확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남북 대립의 분단시대 역사에서 크나큰 분수령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북한의 기원과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8월 종파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8월 종파 사건은 1956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반대 세력인 소련파, 연안파가 김일성의 당 독재와 개인숭배를 비판한 정치 갈등을 말한다. 북한 지도층 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경제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불러온 분파 투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김일성 개인숭배, 실무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간부 선발 정책, 당내 민주주의와 집단지도체제 와해, 김일성의 항일투쟁사 왜곡 등 복합적 원인이 뒤얽혀 있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 사건을 북한 내부에서 태동한 '민주화를 향한 몸부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8월 사건' 또는 '8월 전원회의 사건'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종파'는 김일성의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씌운 전통적 프레임으로서 승자의 관점에서 고안된 용어라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역사의 큰 흐름을 살피면서도, 당시의 주소 북한대사 이상조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의 추이를 세밀하게 추적한다. 이를테면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연설, 폴란드의 포즈난 폭동, 중소분쟁 등 국제적 사태가 이 사건의 추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는 '망원경식' 조망이 그 하나이다. 그렇게 해서 김일성이 스탈린주의 비판을 어떻게 피해 갔는지, 당초 공동대표단을 파견해 김일성 견제에 나섰던 중국과 소련이 나중에는 왜 북한 망명객들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는지가 설명된다. 그런가 하면 사건의 내밀한 전개를 촘촘히 뜯어보는 '현미경식' 서술도 놓치지 않는다. 비판세력이 힘들게 설복한 최용건이 사건 주역 중 한 명인 윤공흠의 전원회의 발언을 빌미로 '변심'한 대목이 그 대표적 장면이다. 이상조의 기록 덕분에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권력투쟁의 이면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북한사 대중화의 탁월한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사의 흐름을 정확히 따라가면서, 읽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지하되 딱딱하지 않다. 가히 역사와 서사의 행복한 만남이라 할 이야기가 곳곳에 담긴 덕분이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으로 책을 싼 이들이 처벌받았다는 대목, 김일성이 집체적 지도에 대해 '집체적 영도도 별것 없어! 어디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지!'라고 평했다는 에피소드 등이 그 예시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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