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해 직접 질문하고, 그 해답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13일 전남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민주시민 토크콘서트' 현장에선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제7기 전남학생의회 소속 학생들이 마주 앉아 자유롭고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첫 질문은 가볍게 시작했다. "탄핵처럼 중대한 재판을 앞두고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셨냐"고 묻자, 문 전 재판관은 달력에 퇴임일을 기준으로 'D-1, D-2'로 하루하루 표시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설명했다. 또 "힘든 날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하루에 10번쯤 되뇌이면 1분이 금방 지나간다"며 간단하지만 실천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공유했다. 테니스와 강연도 그에겐 중요한 해소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지도자라면 다양한 개인의 의견을 하나로 묶어야"
▲"다양한 개인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게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문 전 재판관의 말은 토크콘서트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였다. 그는 "지도자는 국민을 이끄는 존재이기 전에, 설득하고 소통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갈등과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이며 "그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소심한줄 알았는데, 관종이라더라"
▲문 전 재판관은 "공부는 꽤 잘했지만 교복이 낡아서 반장 같은 역할은 하지 않았다"며 학창 시절의 소심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특히 중학교 소풍날, 노래를 부르다 도중에 그만두었던 경험을 전하며 "부끄러움이 많았고, 내성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금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외향적이라고 한다"면서 "성격, 개인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 당시 환경에 지배되거나 또 가려졌을 수 있다. 그래서 청년 때는 자신의 가능성을 일찍 단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자식 진로, '하지 마라'는 말부터 삼가야"
▲한 학부모가 "자녀 진로를 어떻게 돕는 게 좋을까" 묻자 문 전 재판관은 "일단 '하지 마라'는 말부터 하지 말라"고 답했다. 그는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그 결과도 책임지게 하는 게 교육"이라며 "부모는 자기 세대 기준으로 말하지만, 자식이 살아갈 세상은 다르다.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자식을 믿고,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사투리는 감춰도 무식은 못 감춘다"
▲"책을 얼마나 읽냐"는 질문에 문 전 재판관은 "언제 책을 안읽느냐고 물어야 한다"고 말해 회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친구들이 도스토옙스키를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아무것도 몰라 당황한 경험담도 전했다. 그는 "그때 입을 다물면 사투리는 감출 수 있어도. 무식은 감출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이후 2천 권 넘게 책을 읽었다"며 "소신이 없던 나에게 책이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관 시절,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판단할 수 있었던 힘은 결국 독서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해야"
▲문 전 재판관은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독서와 공공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서관을 짓자고 예산을 세우는 정치 그룹과, 짓고도 예산 핑계로 운영을 방해하는 그룹이 있더라"며 "그 차이를 한번 느껴보길 바란다. 그 생각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교생에게는 '죄와 벌'을 추천"
▲최근 로스쿨 학생들에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추천한 문 전 재판관. 그는 "고등학생들이 시간 날 때마다 읽었으면 하는 책은 '죄와 벌'이다"고 꼽았다. '죄와 벌'은 벌이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며 "법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