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광주와 전남에서 일제강점기부터 5·18민주화운동까지 생생한 근현대 역사 교육장이 잇따라 문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광주의 옛 전남도청은 5·18민주화운동 최후의 항전지이자 광주정신의 상징이다. 옛 도청본관과 별관, 도경찰국과 상무관 등 6개 건물이 복원됐다.
나주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지난 3월 5일 개관식을 갖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구국운동에 앞장선 의병의 최대 산실로서 호남지역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도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신안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도 의미있는 공간이다. 하의면, 신의면 상태, 하태도 등 하의3도 주민들이 조선후기부터 360년간 목숨을 걸고 싸운 토지탈환의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곳이다.

#광주 옛 전남도청
오월 시민들의 연대와 희생을 만나다
1980년 5월 광주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전남도청이 지난 2월 다시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치열한 저항과 연대, 슬픔과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 복원 과정을 거쳐 공개되면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이번에 공개된 옛 전남도청은 도청 본관, 도경찰국 본관, 도경찰국 민원실, 도청 회의실, 상무관, 도청 별관 등 총 여섯 구역으로 나뉜다. 각 공간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활동과 희생, 그리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다.
도청 본관은 5·18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의 진압과 시민들의 저항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중심 현장이다.
1980년 5월 22일부터 시민과 학생들은 위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곳에서 무기 회수, 시신 관리, 치안 유지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한 장소로 오늘날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이 공간에서는 전시를 통해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도청 본관 내 지방과에서는 열흘간의 최후 항쟁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한 전시 영상이 상영되고, 다양한 사인 그래픽이 배치돼 있다. 또한 서무과-시민군 상황실, 부지사실-시민수습위원회, 상공국장실-기자회견실 등의 공간이 재현돼 당시 현장에 직접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5·18민주화운동 테마 전시가 진행되는 도경찰국 본관은 당시 시민들의 활동 공간이었지만 관련 자료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3층 복도는 고등학생 2명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로 당시 참혹한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입체 홀로그램 실감영상 콘텐츠를 통해 오월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과 시련을 담은 타임라인 전시, 구술로 풀어내는 오월 광주 사람들의 이야기 전시 등이 마련돼 시민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전달한다.
도경찰국 민원실에서는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방문객을 위한 휴게 공간이 배치돼 있다.
1980년 당시 민원실 복도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희생자의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염습 절차가 진행됐다. 또한 건물 계단 아래에서는 다수의 희생자 시신이 발견돼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한다.
민원실을 둘러보면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와 희생의 흔적을 공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역사적 의미를 체감할 수 있다. 특히 휴게 라운지는 1980년대 당시 분위기로 연출돼 5·18민주화운동 당시 불렸던 노래와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도청 회의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지하 1층이 시민군의 무기고로, 지상 2층은 식사와 휴식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실 공간을 통해 당시 시민군의 조직적 활동과 내부 운영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5·18민주화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추모 공간인 상무관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됐던 장소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슬픔과 분노를 나눴고, 이는 전남도청 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 참여와 자발적 시민 자치 활동으로 이어졌다.
방문자센터 역할을 하는 도청 별관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다양한 회의가 열렸던 공간이다. 일부 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사격 지점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곳은 이후 옛 전남도청 보존·복원 투쟁의 중심지로, 철거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농성이 이어진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옛 전남도청은 지난 2월 28일 재개관해 4월 5일까지 시범 운영을 진행했으며, 오는 5월 중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이번 공개를 통해 시민들은 직접 공간을 걸으며 당시 상황과 시민들의 희생,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감하며 역사적 기억을 계승하고 교육적 가치로 확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주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국난에 맞선 ‘의향 전남’ 자긍심
지난 3월 5일 개관한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전남도가 지난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추진한 사업이다.
2024년 3월 착공에 들어간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총사업비 422억 원이 투입돼, 연면적 7천321㎡ 규모로 조성됐다.
박물관 외벽에는 3만 3천여 ‘키네틱 파사드’ 패널이 설치됐다. 전장을 내달리던 3만 3천 남도의병의 뜨거운 함성을 웅장한 금속음으로 재현했다.
내부 시설은 메모리얼라운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추모전시실, 어린이박물관, 다목적강당, 카페테리아, 수장고 등을 포함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조선시대 최초 의병 활동부터 대한제국 시대 항일 의병 투쟁까지, 나라를 구하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진격한 의병의 역사를 다양한 조형물과 디지털매체 등을 활용해 전시한다.
지난 2019년부터 현재까지 수집한 의병 관련 유물은 총 3천85점이다.
주요 유물은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의병 양달사 통문’, ‘남한폭도대토벌기념사진첩’, ‘동맹록’, ‘황현 매천야록’, ‘황현 초상 및 사진’ 등이다.

호남절의록은 조선 후기 국가 위기 때 호남 출신 의병들의 사적을 수록한 의병록으로, 1799년(정조 23)에 편집·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이인좌의 난 등 5난사에 대한 사건 개요와 절개를 지킨 인물들의 약전(略傳) 형태로 정리됐다.
‘의병 양달사 통문’은 을묘왜변 때 활약한 양달사 의병장의 포상을 올린 통문이다. “을묘년 왜구가 창궐했을 때 수령들이 도망가고 성을 버리고 제 몸만 보전한 사람도 있었지만, 영암군 참봉 양달수와 해남현감 양달사 두 형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기발한 계책을 내 적을 격파해 팔도 백성이 도륙을 면하게 돼 포상을 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남도는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구입·기증·기탁을 통해 의미있는 유물을 소장하고 보존·전시·연구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1전시관에는 독립기념관에서 고향으로 40년 만에 귀향한 ‘불원복(不遠復) 태극기’가 전시돼 감동을 더한다. 지난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원복 태극기’는 고경명 의병장 후손인 고광순 의병장이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 투쟁을 벌일 당시 직접 만들어 사용한 태극기다. 태극 문양 위에 붉은 글씨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不遠復’이란 글귀를 뚜렷하게 수놓았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남도 사람들의 강렬한 구국 충혼이 고스란히 담겼다.
추모전시실은 평범한 민초였던 의병이 자발적으로 봉기했던 애국·애족정신과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어린이박물관은 다가올 미래 시대의 주역으로서 어린이 눈높이에서 의병 생활상을 체험할 교육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다목적강당에서는 대상별 맞춤형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영산강을 조망할 카페테리아는 관람객의 휴게공간이자 지역 관광명소로 조성된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5일부터 4월 23일까지 ‘사진으로 본 나주 정렬사의 어제와 오늘’ 특별전을 열어 임진왜란 때 호남 첫 의병장인 김천일 의병장의 유적과 나주 지역민들의 ‘의’(義)를 조명한다.
전시는 임진왜란 당시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 의병장을 기리는 정렬사의 최초 건립부터 현재 대호동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과정과 그의 뜻을 계승한 나주 지역민의 모습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정렬사의 변천 과정을 고지도와 사진을 통해 살펴보는 자리로, 옛 나주잠사 터에 세워졌던 정렬사비 사진, 남산공원 정렬사 준공 기념 시가행진, 김천일 동상 제막식 사진 등 사진과 고지도 등 총 122점이 공개된다.

#신안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
360년간 농지탈환 투쟁 벌인 농민 역사
하의면 여객터미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향해 가는 도중 옛 하의초등학교 대리분교 자리에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이 있다. 하의3도 주민들이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360년간 투쟁을 벌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농민운동기념관은 토지항쟁기념실, 농경문화실, 정보검색실 등을 갖췄다.
이 중 토지항쟁기념실은 ‘역사의 땅’, ‘항쟁의 땅’, ‘평화의 땅’ 등 3구역으로 나눠 항쟁의 역사를 보여주고 농경문화실은 하의3도 민속마을, 농업실태, 하의도 관광 등을 소개한다.
기념관 앞에는 하의3도 농민운동을 기념하는 상징조형물과 농민운동 기념탑이 자리하고 있다.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은 농민들에게 오랜 한(恨)이던 ‘내 땅’에 대한 염원이 담긴 항쟁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토지문제가 지니고 있던 모순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농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의 역사는 선조의 딸 정명공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의3도 백성들이 개간한 농토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고, 인조가 1623년 20결의 토지를 정명공주에게 하사한 일이 시작점이었다. 이후 4대가 지나면 절수(징세)의 권리를 반환해야 했으나 토지 소유자들은 실천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까지도 이어졌다.
이에 따라 하의3도 농민들은 긴 시간 동안 토지소유권을 찾기 위해 농지탈환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1950년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소유권 무상반환’ 결의를 얻어냈고 1994년 이전등기를 완료했다.
농민운동기념관 옆에는 기념비 5기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비가 일본인 변호사 고노부쓰노스케를 기리는 비다. 1908년 당시 토지소유자였던 풍산홍씨 홍우록의 부당한 소작료 강제징수에 반발해 하의3도민들은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이때 일본인 변호사 고노부쓰노스케가 상고심 변론을 맡아 3년간 노력을 기울인 끝에 승소함으로써 하의3도민들은 소유권을 되찾았다. 기념비는 이같은 고노변호사를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아 1912년 6월 건립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하의도는 한 때 토지 소유자가 일본인이어서 농민운동이 항일운동의 성격을 띄기도 했다.
농민운동기념관은 360년간 하의3도 주민들의 목숨을 건 토지탈환의 역사를 보여준다. 지난 2009년 4월 24일 열린 개막식에는 김 전 대통령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에서 하의3도 주민과 유족, 향우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7회 하의3도농지타로한춘동 희생자 위령제를 갖기도 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나주=김진석기자 suk1586@mdilbo.com
신안=박민선기자 wlaud2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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