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의 군대 이동과 비상계엄.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책에서나 보던 일이 45년 만에 또다시 현실에서 재현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밤새 뜬눈을 세운 국민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었던 국민들도 많았을 '계엄', 비상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레 선포하면서다.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장 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를 거론하면서 말이다.
80년대에서나 들어봤을 이념적인 논리를 부르짖는 대통령의 모습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무엇이 대통령을 저렇게 궁지에 몰아넣었기에 최후의 선택이나 다름없는 '계엄'을 선포해야만 했던 것인지 지켜보던 국민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국회의사당을 장악하기 위해 계엄군을, 그것도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이자 트라우마나 다름없는 '공수부대 '즉 특전사를 투입하면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국민들로 하여금 불안·걱정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다행히 계엄군으로 투입된 특전사들이 강경 대응보단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의결되자 곧바로 청사밖으로 물러나면서 큰 충돌 없이 상황은 불행 중 다행으로 마무리됐다.
자칫 인명 피해가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으면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을 기록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80년 5월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광주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로썬 이번 계엄으로 인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번 계엄을 보면서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서울의 봄'이 오버랩되는 건 비단 필자 혼자 만은 아닐 것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다뤘던 '서울의 봄'과 상황은 다르지만 계엄군이 전격적으로 진입해 모든 반대파를 제압하고 정국 주도권을 잡는다는 부분에선 첫 2시간은 너무나 비슷했다.
계엄을 법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인 '국회' 제압에 성공했다면 지금 이 시간도 계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데다 윤 대통령이 척결대상으로 삼았던 '국회'를 제거하고 정국을 장악할 수 있었다.
계엄 선포 하루 전부터 계엄군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던 특전사 작전팀들이 출동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등 계획대로였으면 45년 만에 '서울의 봄'이 재현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영화 속에서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킨 수많은 '이태신(수도경비사령관)'이 있었기에 역사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계엄 선포를 건의했다는 김용현 국방부장관과 박안수 계엄사령관의 지휘가 국회 장악을 시도한 특전사와 수방사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까지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전군을 지휘하는 합참의장 대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수장으로 임명되면서 계엄 지시는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으며, 수도권을 책임지는 육군지상작전사령부와 수도군단 역시 계엄과 관련한 임무에 참여하지 않았다.
권력에 눈이 멀어 정치에 개입하려던 군인이 아닌 본연의 자세를 지킨 군인들과 조기에 계엄 해제 건의안을 통과시킨 여야 국회의원들, 그리고 늦은 밤거리로 나가 계엄군에 맞섰던 시민들, 즉 수많은 '이태신'이 있었기에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6시간 만에 종결될 수 있었다.
외국 전문가들도 이번 계엄을 두고 '한국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했지만 (군사독재 이후 ) 지난 30여 년은 한국국민이 민주주의 후퇴를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보여줬다','정치인과 시민사회의 신속한 대응을 볼 때 이번 위기는 시민의 감독을 재확인하고 제도적인 회복력을 발휘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만큼 성숙한 시민들이, '이태신'들이 있었기에 계엄 조기 종료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서울의 봄' 이후로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이라는 암흑기를 거쳤지만, 이번 계엄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윤 대통령이 먼저 하야를 선택하든, 아니면 탄핵으로 자리에서 내려오든, 그 문제는 앞으로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확실한 건 성숙할 대로 성숙한 시민들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감독하고 있으며, 더 이상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억압하는 권력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는 '이태신'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닥칠 혼란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서울의 봄'이 찾아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을 수많은 시민들 말이다. 류성훈 디지털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