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특별시, '반도체 금융망' 승부수···기업은행 유치 실현 가능성은

박찬 기자
업데이트 2026.08.31. 18:23
민형배 시장 "반도체 기업 힘 보탤 것"
'반도체·AI·에너지' 금융수요 일원화 전략
'중소기업 정책금융' 대구 등 경쟁 치열
법 개정·정치권 셈법 등 과제도 첩첩산중
"세부 전략 부족…면밀한 준비 필요" 지적도
IBK기업은행 본점. 뉴시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반도체 클러스터의 ‘금융 혈맥’을 구축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IBK기업은행(기업은행)을 유치 대상에 포함하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 필요한 정책금융을 지역에서 공급하겠다는 명분이다. 여기에 광주의 반도체·인공지능(AI)과 나주의 에너지 산업을 금융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업은행 유치는 대구·대전·부산시 등 경쟁 지자체도 공을 들이고 있는 데다 본점 이전을 위해 법 개정까지 필요한 사안이다.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현재 지방 이전과 관련한 공식 논의나 검토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유치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31일 광주특별시에 따르면 민형배 시장은 지난 27일 광주청사에서 열린 ‘제2차 공공기관 우선 이전 약속이행 범시민 결의대회’에서 정부에 기업은행을 전남광주로 이전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민 시장이 기업은행을 직접 거론한 핵심 배경은 ‘자본’이다. 민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자가 이뤄질 경우 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본이라는 분석이다. 자본이 원활하게 흘러야 반도체 기업과 관련 산업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빛가람 나주혁신도시 전경. 뉴시스

광주권에는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전남권에는 에너지와 관련 산업 기반을 확장하면서 기업은행을 통해 시설·운전자금과 소부장 기업 등에 대한 금융 지원을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광주와 나주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을 수 있다는 점은 다른 경쟁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민 시장은 다른 지역이 혁신도시를 분산 배치한 것과 달리 광주특별시는 나주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공동으로 집적했고, 시·도 행정통합까지 이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전남광주는 에너지·환경, 농수산, AI 첨단산업, 문화예술, 사회서비스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40개 공공기관을 유치 대상으로 제시한 데 이어 반도체 용수·인재 관련 기관도 추가로 건의한 상태다. 기업은행까지 포함하면 유치 희망 기관은 46곳으로 늘어난다.

다만 경쟁도시들 또한 기업은행 유치를 놓고 사활을 걸고 있다.

대구시는 이미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숙웝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본점이 자리 잡고 있어 기업은행과 연계할 경우 중소기업 금융지원과 보증 기능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 기반이 강한 지역이라는 점도 주요 유치 명분이다. 정동화 대구시 공공기관이전 담당관도 최근 “유치 희망 1순위 공공기관은 기업은행”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부산시 역시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기관 집적을 추진해 왔다. 금융 중심지라는 기반을 갖추고 있는 도시 이미지와 연계해 금융기관 추가 이전 논의가 진행될 경우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된다. 최근 국회에서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부산 이전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전시는 과학기술·연구개발(R&D) 기능과 연계한 공공기관 이전 논리를 앞세울 수 있다.

광주특별시의 ‘반도체 금융망’ 논리가 이들 경쟁 지자체와 비교해 정부의 기관 배치 기준과 얼마나 맞아떨어질지가 관건인 셈이다.

정부가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을 분산 배치보단 산업과 기능을 고려한 특정 지역 집중 배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기회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월 “이전 기관을 과거처럼 분산하면 집중 효과가 떨어진다. 가능한 범위에서 기관을 몰아 보내겠다”는 취지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광주특별시는 이 같은 정책 방향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AI·에너지라는 산업 기반과 기존 나주혁신도시의 공공기관 집적, 여기에 전남광주 행정통합까지 묶으면 특정 기관 하나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공공기관-금융’이 결합된 거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한국산업은행지부, 기업은행지부, 한국수출입은행지부가 주최한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깃발 입장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기업은행 유치까지는 법 개정부터 노조 반발, 이전에 따른 인력 이탈 문제 등 과제 또한 첩첩산중이다.

현행 중소기업은행법 제4조는 기업은행 본점을 서울시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면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실제로 대구 이전을 담은 중소기업은행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장기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또한 금융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정무위원회 소관 법률 개정이 필요한 만큼 정치권의 지역구 셈법도 변수다. 국회에서도 금융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싸고 지역별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법 개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기업은행 측은 현재까지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한 공식 논의나 내부 검토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기관별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이전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광주특별시가 이전을 요청한 또다른 금융기관 농협·수협중앙회의 경우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1인 1표’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다. 전남광주와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강원권 등 다른 지역의 조합원 표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반면 기업은행은 주주 비중이 높은 주주와 이사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고려하면 본점 이전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현실화 가능성도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의 지역 점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본점이 들어오게 되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지금보다 커질 것”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역 산업에 대한 금융 공급 확대와 기업은행 본점 이전은 별개라고 진단했다. 광주특별시 차원에서 단순히 타 지자체와 차별화된 전략 외에 더 구체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변장섭 전남대 지역개발연구소 부소장은 “기업은행 유치와 관련해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어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할지, 기존 금융기관과 어떤 역할 분담할지 등 분석과 구체적인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며 “광주특별시 출범 전인 지난해까지 전남연구원에서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대상 기관별로 이전에 따른 효과 등을 분석한 데이터가 있다. 이를 토대로 기관별 이전 효과와 지역 파급효과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찬기자 juve5836@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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