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 수만리에 있는 바우정원은 정원지기의 열정이 녹아있다. 정원지기의 문화적 감수성과 자연에 대한 그의 철학이 오롯이 나무와 조형물에 그대로 담겨있다. 누구에게는 그냥 나무이고 바위이었지만, 정원지기에는 인생 2막의 꿈을 이루는 대상이었고, 자연의 삶을 살아가는 동료이다.
화순읍에서 수만리 무등산 자연휴양림을 가기 직전 우측에 '수만리'라는 아담한 공간이 눈에 띈다. 무등산 자락이라 오고 가는 차량도 많고, 수만리 일대 주변에 볼만한 곳이 많아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수만리는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커피를 파는 곳으로 생각하면 단견이다. 정원의 쉼터이고, 핫한 공간이다. 이날도 인디밴드 무박 2일 공연 날이어서 카페 1층에 마련된 무대 주변에는 가수와 관객들로 북적였다. 젊은 층만 아니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들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뜬 분위기였다. 카페 내부를 벗어나면 바우정원의 연장 선상이다. 카페와 정원은 맞닿아 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폐품이 작가의 손길로 재탄생하고 생명 잃은 폐나뭇조각은 멋진 조형물로 변했으니 말이다. 폐 쇳덩어리와 나뭇조각을 멋지게 변신시킨 정원주에 대한 궁금증을 묻어나게 하는 소품이다.
안내 지도에 따라 정원으로 들어가면 화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목공예, 문화재 석공들과 공동작업으로 펼쳐진 자연과 예술이 호흡하는 현장을 만난다. 문화적 식견이 높은 정원지기 안국현 대표는 20년간 그의 재산과 땀과 노력을 쏟으며 바우정원을 가꾸고 있다. 정원은 넓은 산속이 무대다. 그렇기에 거칠고 투박한 대상이 문화예술을 품고 정제미를 풍긴다. 지난 2008년 밀리터리 캠핑장 조성 당시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10여년간 세련되게 바뀌었다. 안 대표가 재미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격세지감이 든다.
바우정원의 5만평 일대 산은 10여개 사이트로 구성돼 있다. 각 사이트는 평범한 곳도 있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재능과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다정하고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수평 창고의 경우는 그동안 정원을 가꾸는데 사용한 공구들을 설치 미술처럼 모아놓은 곳이다. 오래된 물건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공간 구성에는 미국 하버드대학 출신의 아이디어가 보태지고, 설치작가, 조경 전문가 등이 최대한 인공미를 배제한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그들의 넘쳐나는 창의성과 재능을 녹여냈다. 젊은 시절 건축업을 한 안 대표는 화가와 음악가, 문화기획자들과의 교류와 소통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건축업을 그만두고 산림복합경영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이들의 응원은 든든한 힘이 됐다.

안 대표는 지난 2008년 본격적으로 바우정원 만들기에 나섰다. 그가 건축업을 하면서 구입한 산과 땅을 중심으로 산림복합경영을 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산림 전문가가 아니어서 현실의 높은 벽을 절감했다. 그는 힘이 들어도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진정성 있게 매달렸고, 그럴 때마다 백기사들이 나타났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에서 보듯 누군가의 손길과 지혜, 정보로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이렇게 산에 매달린 그의 진심은 정원에 스며 있다.

바우정원의 시그니처는 바위이다. 정원주들이 정원석을 정원에 앉히려면 적지않은 돈과 노력이 따른다. 그런데 바우정원에서는 바위가 지천에 널려있어, 부존자원이다. 바우정원의 바위는 지질학적으로 8천600만년 전에 형성된 주상절리인 서석대나 입석대처럼 무등산권 지형과 비슷하다. 땅을 파면 바위가 나오는 지형 특성으로 작업 과정이 결코 순탄치 만은 아니었음은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바우는 작업이 까다롭고 힘든 물성이었지만 그의 내재된 예술적 소양과 창의력을 풀어낸 소재였다. 정원을 거닐면서 마주치는 바위는 훤하게 전면을 드러내고 있다. 안 대표가 중장비를 동원해서 바위를 가리고 있는 흙과 잡목들을 걷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서다. 정원에 진심이었던 안 대표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산속에 있는 정원 관리사도 그의 성향을 투사하는 건물이다.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처럼 한쪽이 기울어졌다. 건설비로 한 평에 1천만원이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과감하게 이 건물을 지었다. 단지 바우정원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비스듬한 건물에서는 안 대표의 고집스러움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바우정원에서는 조형물 치코스벨리도 이색적이다. 이곳에 도롱뇽이 많이 살고 있는 것에 착안, 스페인 가우디가 건축한 구엘공원의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정원을 찾아온 이들에게 기억나는 재밋거리를 주고자 하는 안 대표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예술을 입은 등산로와 계단, 펜스 등은 바우정원의 기능과 디자인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구성물이다. 활용한 소재는 폐쇳덩이와 폐나무 등이다. 이쯤 되면 업사이클 차원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수만리 커피 2층 난간을 두르고 있는 철제는 일제 강점기에 만든 동복교 구조물의 일부였다. 카페가 2층이어서 난간 설치를 고민하던 안 대표가 우연히 고물상에서 이 철제를 본 이후 '동복교 100년의 추억'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바우정원의 나무들은 모두 자연림이다. 바우정원 숲속을 거닐면 덜꿩나무, 박쥐나무, 고욤나무, 광대싸리, 물푸레나무 등 수십 종이 빽빽하게 나무 그늘을 드리운다. 그 아래에는 약초와 야생화들이 자생한다. 나무와 풀들은 벌써 울긋불긋 오색 빛깔을 만들어낼 준비로 분주함이 전해진다.
바위를 뜻하는 바우에는 안 대표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안 대표는 수천년을 지켜온 바우와의 묵언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가야할 방향을 묻고 한다.
바우정원은 지난 2020년 민간정원 제11호로 멤버가 됐다. 산림청이 선정한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에 당당히 뽑히기도 했다. 대부분 민간정원에서는 꽃과 나무가 주인공인데 반해, 바우정원은 산을 중심으로 바우와 이끼가 주역이다. 바위와 이끼 중심의 민간정원은 바우정원이 유일하다.

바우정원 전체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무와 꽃들과 함께 민낯 그대로 드러낸 바우와 예술가의 창의성 넘치는 상상의 흔적을 만나는 기쁨은 덤이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정원 전체를 싸목싸목 걸으며 가슴을 활짝 열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 청량한 공기를 음미하다 가슴으로 호흡해본다. 어느새 바우정원의 청량함이 내 안을 푸르게 채움을 느낄 수 있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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