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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밭 위에 피어난 초록 낙원, '산이 정원이네'

입력 2025.07.02. 16:53
[남도정원산책] 해남 산이정원
바다 메운 땅 염분 많아 식물 자라기 어려워
5만평 간척지에 꽃과 나무 생명공간으로
미래 친환경 도시 솔라시도 주요 콘텐츠
정원 한 중앙 200년 된 동백나무 상징물
'BS 보성' 이기승 회장 철학에서 첫 시작
현재 보다 더 아름다운 미래 상상 더 행복
산이정원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유영호 작가의 브릿지오브휴먼.

완전 무장 해제된 느낌이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대지 위 모습을 드러낸 꽃들은 살아있는 그림처럼 다가온다. 7월 초여름 해남 산이면 산이정원의 풍경은 화려함보다 차분함을 준다. 지난겨울을 무사히 넘겼던 아마리우스는 여전하나 때죽나무의 달콤한 향기는 자취를 감추고 금작화와 노란 꽃 나리와 보랏빛 멀구슬나무꽃도 피고 졌지만, 피톤치드가 가장 풍부한 블루아이스, 나비 먹이인 붓들리아, 체리 세이지 등 풀꽃들이 저마다 주연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조연이다. 연둣빛 나뭇잎은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무성한 녹색 잎들은 몸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씻어내는 촉매제이다.

◆척박한 간척지 생명의 공간으로

광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 바다를 메운 간척지 위에서 피워낸 나무와 꽃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긴 행렬의 매표소를 지나 거대한 파도를 떠올리게 꾸민 맞이정원의 허브들이 은은한 향을 발산한다. 꽃과 나무 사이로 비친 가족, 연인, 친구 간의 얼굴은 평화롭고 행복감이 넘치는 표정이다.

해남군 산이면 산이정원은 산이반도 앞 작은 섬 사이를 흐르던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은 생명이 깃든 녹색 세상이 됐다. 1969년까지 달도, 독도, 송도 등 섬으로 이뤄진 산이면은 1978년 서남해안 간척지 개발사업을 시작으로 탈바꿈했다.

산이정원은 땅의 역사를 기억하고 땅의 생명력과 자연의 순리에 따라 미래를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생명의 공간을 목표로 한다. 현재 눈앞의 풍경이 모두가 아니라 언젠가 자리 잡게 될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꿈꾼다. 오늘, 심겨진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과정이다. 산이정원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간척지 위에서 피워낸 꽃과 나무도 경이로운 일이나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만들어낼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행복하다.

뿌리가 바다인 산이정원이 성경속의 가나안 넘어 요단강처럼 자유로움과 정원사의 손길로 새롭게 내일을 꽉 채운 녹색으로 빛나는 약속의 땅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병철 산이정원대표가 산이정원 후박나무 숲에서만 서식하는 청띠 제비를 그림으로 묘사한 안내도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땅 살리는 일"… 정원 토대 마련

산이정원은 미래도시의 표준이 되는 신환경 정원도시 솔라시도의 시그니처 공간이다. 시작은 중견그룹인 'BS 보성' 이기승 회장의 땅에 대한 철학이 밑돌을 놓았다. 이 회장은 오래전 관광레저도시로 지정된 이 일대를 솔라시도로 명명하고 땅을 죽이는 개발이 아닌 살리는 기획과 아이디어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30여년간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일군 이병철 대표와 만났다. 이병철 대표의 얘기다. "회장님께서는 토목공사를 많이 해서 땅을 죽였다. 이젠 땅을 살리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아 든 그에게도 산이면의 자연은 녹록지 않았다. 다시 이 대표 얘기다. "겨울에 몇 차례 와서 이곳의 지형과 날씨 등을 살펴봤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가만히 있어도 눈물과 콧물이 흐를 만큼 식물이 자라기에 여건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간척지라 염기가 많아 식물이 자라 는데 치명적 난제도 있었습니다."

산이정원 입구에 세워진 안내타워.

그는 지표를 땅으로 덮는 성토 작업에 들어갔다. 나무와 꽃 등 식물이 지표보다 더 높은 지점에 심겨진 이유다. 정원설계는 최대한 지형과 지리적 특성을 살려 반영했다. 무엇보다 산이면의 역사에 스토리를 입혔다. 정원의 이름은 '산이 정원이네' 등 중의적 의미를 담았고, 산이정원이 위치한 구성(九星)리 명칭에 맞게 9개의 별을 뜻하는 9개 섹션으로 연출한 것과 맥이 통한다. 이름하여 구성구경(九星九京)은 땅과 바람과 햇빛이 내재한 솔라시도의 인프라이다.

이러한 테마로 조성된 어린왕자, 약속의정원 등에는 이야기가 녹아있다. 어린왕자와 공주 벤치는 왕이 혼자 차지했던 영토가 시민의 공원으로 치환된 것을 비유한다. 이 의자에 앉아 누구나 한 번쯤 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린이에게는 또 다른 꿈과 희망을, 어른에게는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추억을, 세대간 만남의 장이다. 에덴동산의 원형을 상징한 아담한 웨딩홀은 세대와 미래를 이어주는 행복공간이다. 젊은 연인들이 호기심으로 예식장을 둘러보는 것도 정겹고, 행복감이 넘쳐난다. 등나무, 금사슬, 왕찔레, 능수국, 멀꿀, 백화등 등 덩굴식물이 몇년후면 포골라(아치형 구조물)를 뒤덮을 정원은 새출발을 하는 신혼부부에게 다양한 향기로 축복하는 결혼식장이 될 것이다. 결혼식장은 향기로 진동하고, 탁트인 푸른 카펫 같은 잔디는 연회장이고, 나무와 방문객은 하객이 니, 이보다 더 근사한 결혼식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200년 동백나무에서 핀 동백꽃 모습을 대형 하얀천위에 자수를 떠서 산이정원 기프트 코너 벽위에 걸어넣었다.

◆모두에게 열린 친환경 공간

산이정원에서는 "하지 마시오", "꺾지 마시오" 등 금지를 뜻하는 팻말이 없다. 방문객들은 반려견과 입장이 가능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도 있다. 향이 삼백리를 간다는 삼백초를 뜯어 냄새를 맡아도 되고, 잔디밭 위에서 요가를 해도 제지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장애물도 없고 열려있는 학습과 체험장이다. 산이정원의 컨셉인 보여주는 정원에서 그치지 않고 걷고 만지고 느끼게 한다.

미래와의 연결에 방점을 둔 산이정원에서 지난 2022년 산이면 구성리의 어느 밭 한가운데서 이식된 200년 된 동백나무는 눈길을 끈다. 정원 중앙에 도드라지게 홀로 서 있는 아름다운 수형의 나무이다. 트랙터 작업 때 자주 나무 밑동이 다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밭주인이 산이정원에 잘 키워달라고 기증한 것이다. 이식된 지 3년이 지난 200년 된 동백나무는 산이정원의 랜드마크가 됐다. 방문객들은 동백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서 공유, 시공간을 넘어 사랑받고 있다. 200년 동백나무는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말하는 상징물이 됐다.

산이정원은 2023년 토목 공사에 들어가 2년여에 걸쳐 지난해 5월4일 개장했다. 계획된 16만평 중 5만평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곤충호텔을 비롯한 나머지 공간도 차근차근 채워 나가고 있다. 산이정원은 작년 5월4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수 있다.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던 허허벌판이 1년만에 10만명이 찾는 곳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렇다고 미래 정원을 향한 지향점이 있기에 비관적이지는 않다.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이자 AI시대 중심지로서 비전이 관계자들을 곧추세우게 한다.

산이정원은 화석연료를 배제하고 태양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을 활용한 스마트시티의 핵심 콘텐츠이다. 이재명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이터센터에 입주할 국내외 유수의 관련 기업은 지속가능한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친환경에 바탕을 둔 산이정원의 주된 개념은 날씨 사냥꾼이다. 세상에 없는 날씨 사냥꾼 정원은 날씨를 이용해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라는 직업을 어린이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햇볕이 태양에너지, 바람이 풍력에너지가 되듯 궁극적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키는 사냥꾼이 돼야 함을 친환경 정원안에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이정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고 있는 200년 동백나무. 산이정원 한 중아에 자리잡은 나무의 웅장한 수형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탄소중립 실현에도 앞장

갈대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98MW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정원은 친환경 산이정원의 심장과 같다.

산이정원은 잘 꾸며진 정원만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꽃과 나무를 보는 것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의 역할에 충실하다.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청띠 제비나비들이 노니는 후박나무로 둘러싸인 사색의 숲에서 AI시대 인지 창의력을 키워줄 어린이 명상학교를 카이스트와 협업하는 사례는 대표적이다. 전남도교육청과 협업하는 ESG정원 역시 거대한 교실이자 생태대학 캠퍼스다. 지구촌 숙제인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다짐하는 '약속의 숲'도 주목을 받는다. 인근의 산이서초등학교 전교생 42명이 2050년 개봉을 목표로 탄소중립 소망을 담은 타임캡슐을 묻었다.

구성리 어느 밭에서 이식된 200년된 동백나무. 구멍이 뚫린 외피에서 동백나무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산이정원은 풍부한 종다양성을 지향한다. 외부에서 거론하는 식물쇄국주의론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이병철 대표는 "우리나라에 5천7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특산고유종은 457종에 불과하고, 그나마 대부분 멸종위기에 있어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정된 종류로 정원을 만들어가기에는 글로벌시대에는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땅에 터를 잡고 사는 식물들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것으로 발전하게된다"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장미, 국화, 나리꽃 등 우리 품종을 많이 심어 풍부한 종다양성으로 더 풍성하게 하고 그윽한 자연미를 더해주고 황홀한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산이정원에서는 심겨진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울창한 그늘을 만들면서, 대한민국의 내일이 푸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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