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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말의 힘, 그리고 독서

@이규연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관 입력 2025.02.04. 17:38
이규연 광주시교육청 장학관

을사년의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으면 으레 덕담을 나누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당연한데, 올해는 긴 설날 연휴가 주어졌음에도 새해의 느낌은 예년같지 않다. 명절을 맞이해서 찾은 극장가는 명절 분위기는커녕 흥행작이 없던 시기보다 더 한산한 느낌을 받았다. 1905년 을사년에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겨 온 나라 사람들이 치욕스럽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에서 파생한 '을씨년스럽다'가 120년이 지난 올해 을사년 새해에 비슷한 분위기가 재현되고 있는 듯싶어 더욱 서글프다.

새해의 덕담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에서부터 일상까지 어지러운 말들이 가득하면서 심란함을 더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나 말만이 옳고,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적대시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최소한의 격을 갖추었던 공당이나 집회 연단에서의 말들이 일상의 평온함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토론이나 대화에서도 정제되고 배려 깊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필자가 대학 시절 날짱날짱 춤사위와 잔가락이 독보적인 진도북춤, 채록본이 수백 쪽이 넘는 진도아리랑, 선 굵은 봉산탈춤 등을 배울 때 모두 선배들의 구음이나 말로 배웠다. 수 백년을 이어 온 설화의 전승력의 밑바탕은 세대를 이어 준 말이었다. 비트켄슈타인처럼 일상언어를 바탕으로 본질을 고민한 언어 철학을 처음 접할 때의 생경함과 경외로움은 우리말을 전공하고 교단에 서는 것을 희망하던 필자에겐 언어의 힘, 특히 말이 갖는 힘을 더욱 믿게 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교단에서 고전문학 시간에 '해가'라는 신라가요를 가르칠 때가 있었다. 해가의 배경설화에는 미모가 뛰어난 수로부인을 바다의 용이 납치해 가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므로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 부인을 찾을 것이다'라는 한 노인의 말을 듣고 '해가'라는 노래를 부르니 바다의 용이 수로부인을 내놓았다는 부분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말의 힘에 대해서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서 함께 외치는 구호,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기도나 주문, 노래인지 절규인지 알 수 없는 훈련병의 군가, 그리고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목청껏 부르는 관중들의 집단 응원가에서 느껴지는 전율도 그러한 말의 힘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말에는 영(靈)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에 대화할 때 말 하나하나에 신중하고 조심한다는 전문직 한 선배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거나 자신이 뱉은 한 마디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불사하는 모습을 다룬 영화에 감동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 자신이 사용하는 말의 한계가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 대한 한계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갖는 말의 한계를 넓히기 위한 가장 좋은 무기는 독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내 말도 달라진다.

다 함께 읽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격조 있고 가치 있는 말들이 일상에서 팔팔하게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짱돌, 각목,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대에 처음 촛불이 등장했을 때 연약한 촛불이 최루탄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이제는 촛불만이 아닌 응원봉까지 등장하는 오늘날의 집회 모습으로 성장한 것처럼 을씨년스럽고 암울한 새해를 맞이하고 입춘에도 한파가 밀려오는 아픈 지금이지만 곧 다가올 진정한 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이성적인 말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배려하는 품격있는 말로 가득한 봄을 맞이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 다시 책으로 다 함께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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