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은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그 가치를 시험받아 왔다. 오늘날 세계는 다시 한번 그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의 확산과 (특히 우파) 포퓰리즘의 대두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참여는 위축되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인권은 더 이상 저절로 유지되는 가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세계인권도시포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권의 위기 앞에서 도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위기와 세계인권도시포럼의 역할
2011년부터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에서 시작된 세계인권도시포럼은 세계 지방정부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인권 전문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국제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 포럼은 인권을 선언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다루며, 도시에서 시민의 존엄과 권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 왔다.
올해 세계인권도시포럼은‘권위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인권도시’를 주제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주제는 현재 세계가 직면한 현실적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포퓰리즘은 탈진실과 선동을 바탕으로 사회를 갈라놓는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수록 사회는 양극화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약화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인권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흐름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 각 도시의 사례를 통해 기본권이 어떻게 위축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도시가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지방정부의 인권정책, 시민사회와의 협력, 도시 간 국제연대가 중요한 해법으로 제시될 것이다.
광주의 역사와 인권도시로서의 책임
특히 올해 포럼은 5·18민주화운동 46주년과 맞물려 개최되며, 단순히 행사장에 머무르지 않고 광주 전역의 역사 현장과 연결된다. 이는 인권의 가치를 단순한 담론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현실 속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볼커 튀르크(Volker Turk)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포럼 참석은 이번 포럼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세계인권도시포럼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한층 확장시키는 계기이자, 광주의 5·18 정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인권도시포럼이 오랜 기간 광주에서 지속되어 온 이유 역시 분명하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시민 스스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낸 도시다. 이러한 역사는 인권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고, 이후 인권헌장 제정과 국제 네트워크 구축 등 정책적 실천으로 이어져 왔다. 광주는 역사와 정책이 결합된 인권도시로서, 세계 도시들과 경험과 해법을 공유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과 책임을 갖고 있다.
위기의 해법, 도시와 시민의 실천에서
아울러 이번 포럼에서는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가 함께 참여해 인공지능 시대의 인권 문제 역시 주요 의제로 다룬다.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편향, 디지털 격차와 같은 새로운 인권 과제도 동반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시가 어떤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결국 인권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특히 도시는 시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공간으로서, 인권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데 있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세계인권도시포럼은 이러한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자리다. 동시에 시민 누구나 참여해 세계적 논의를 공유하고, 인권도시의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는 열린 장이기도 하다. 광주는 앞으로도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인권도시로서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시민들이 인권 담론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인권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해법 또한 분명하다. 도시가 책임 있게 나서고, 시민이 함께할 때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다가오는 세계인권도시포럼이 광주에서 인권도시의 미래를 여는 실천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