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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024년 12월···광주가 지킨 공동체의 온기

입력 2025.01.09. 19:45
■'제주항공 참사' 위기에 빛난 광주정신
시민들 너나할거 없이 현장으로 달려가 도움 손길 건네
광주시, 유기적 대응에 유족·시민 사고 수습·애도에 집중
공직자들 헌신 빛나…"온 마음으로 혼연일체 돼 움직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참사 희생자 분향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2024년 12월 29일 오전. 갑작스레 날아든 제주항공 참사 비보는 광주 지역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그와 동시에 시민들이 보여준 나눔과 연대, 공동체 정신은 비극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슬픔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역사회가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 된 광주'의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직사회의 유기적 대응,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협력이 어우러지며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특히 광주시 공직자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전면에 나서 참사 수습을 위한 노력으로 돋보였다. 수백명의 공직자들은 현장에 24시간 머물며 유가족을 지원했고, 또 상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며 분향소도 지켰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 '통합돌봄'과 같은 정책들이 희생자들의 돌봄 빈자리를 채웠다.

광주시는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유족을 돕기 위해 유족 별로 1대 1로 전담공무원을 매칭해 현장에서 지원했다. 매일 165명이 무안공항과 장례식장에 상주해 유가족을 도왔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지난 3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 지원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

◆80년 광주 비극 재현…공동체 정신도 함께 숨 쉬었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에서 승무원을 제외한 승객 175명 중 광주시민은 실거주자까지 포함해 85명, 전남도민은 72명에 달한다. 광주와 전남이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참사는 '80년 광주'에 버금가는 비극이다.

80년 5월 비극에서 나눔과 연대, 공동체, 대동으로 표현되는 '광주 정신'이 피어났듯, 이번 참사에서 광주 정신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광주시민들은 사고 직후 봉사하기 위해 또 조문하기 위해, 혹은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어서와 같은 이유로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지난달 29일 이후 무안국제공항 자원봉사자로 온 5천509명의 시민 상당수는 광주시민으로 알려졌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봉사자들은 현장에 간이부스를 설치해 생수나 담요, 방한용품을 유가족에 전달했다. 또 죽과 국, 밥, 반찬을 마련해 유가족과 사고 수습을 도왔다. 광주 각 자치구 자원봉사센터 회원들도 현장에서 급식 봉사로 도움의 손길을 보탰다.

무안공항에서 3일간 봉사를 한 박진원 전 광주 동구의원은 "참사가 발생한 뒤 SNS에서 시민들이 너도나도 할 거 없이 무안공항에 가서 손을 보태자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30명가량이 무안공항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200여명이 넘는 광주시 공직자들은 매일 무안국제공항과 장례식장 등을 오가며 제주항공 참사 수습과 유가족 지원을 위해 헌신했다. 한 광주시청 공직자가 현황판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무안공항으로 가지 못한 시민들은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합동분향소 운영 기간 2만 2천여명이 넘는 시민이 조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긴 줄을 기다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분향소 인근에서는 광주시새마을회와 동구자원봉사센터, 광주은행 지역사랑봉사단 등이 부스를 차리고 핫팩과 따뜻한 차 등을 조문객들에게 건네며 온기를 불어넣었다.

故 이광용 나무치과 원장이 이번 참사에서 희생되자 동료 의사들은 환자들을 대신 치료해주기로 뜻을 모으며 주목받았다. 한 동료 의사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지는 않지만, 원장님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환자분들과 아이들을 위해 사셨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광주시 각계각층에서 제주항공 참사 직후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해 자원봉사를 펼쳤다. 광주시·구자원봉사센터가 무안국제공항에서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모습.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하기도 한 안유성 명장은 참사 다음날 직원들과 함께 김밥 200인분을 싸 와 유가족 등에 전달했다. 이어 지난 1일에도 함께 방송을 진행했던 요리사들과 동료 직원들, 지역 자영업자들과 무안공항을 찾아 전복죽 700인분을 전달하며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했다. 공항 인근에서 요식업을 하는 시민들도 가게 문을 닫고 전복죽을 끓여와 동참했다. 안 명장은 "5·18 때 주먹밥을 만들었던 시민들처럼 십시일반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하며 유족들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참사 유가족 대표가 '유가족 사칭'이라는 가짜뉴스가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등 무분별한 왜곡·유포된 가짜뉴스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또 한 번 흘리게 했다. 이에 대해서도 광주시민들이 나섰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유가족 지원을 위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지난달 30일부터 무안공항에 현장상황실을 차려 실시간으로 대응했다. 또 법률지원 창구를 마련해 법적 도움도 주고 있다.

광주시 공직자들은 제주항공 참사 직후 무안국제공항 등 현장에서 1대 1로 유가족을 전담하며 사고 수습을 지원했다. 광주시청 공직자가 지원 업무 도중 음료를 마시는 모습.

◆광주시 조직적 대응…공직자 헌신 빛났다

광주시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유족들과 시민들이 사고 수습과 애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강기정 시장은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한편 매일 무안공항과 분향소를 오가며 유족들과 직접 소통하며 상주 역할을 했다. 법조인 출신의 이상갑 문화경제부시장은 무안공항에 상주하며 현장을 지휘했고, 고광완 행정부시장은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와 소통을 전담했다. 이 같은 대응은 사고 현장과 장례식장, 합동분향소 등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

강 시장은 참사 직후 휴일임에도 곧바로 긴급 상황회의를 연 뒤 지역재난대책본부로 전환해 직원들을 무안공항 현장으로 급파했다. 광주시는 무안공항에 유가족 지원 데스크를 설치하고, 경황이 없을 유가족들과 방문객들의 편의를 지원했다.

특히 공직자들은 밤낮없이 유가족 곁에 머물며 행정적 지원을 넘어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도록 헌신했다.

광주시는 지난달 29일 제주항공 사고 직후 현장에 직원을 급파해 '유가족 지원 안내데스크'를 설치하고 유가족과 방문객들의 편의를 지원했다.

광주시는 2인 1조(과장급 1명·자치구 사무관급 1명)로 58개조를 구성한 뒤 유족 별로 1대 1로 매칭해 사고 현장에서 지원했다. 매일 165명이 무안공항과 장례식장에 상주해 유가족을 도왔다. 1개조 12명, 총 3개 조를 편성해 합동분향소를 운영했다. 시청 1층에는 유족지원반을 운영하기도 했다. 광주시 공직자들은 희생자 유족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 부고 안내와 누리집 등 각종 방법을 동원해 부고 안내를 지원했다.

장례 절차를 돕기 위해 화장장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영락공원에 특별 안치실을 마련해 가족 단위의 희생자들을 한 공간에 안치했다. 5·18민주광장과 4개 자치구에 합동분향소를 운영했다.

또 온라인 분향소를 운영해 시민들이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추모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온라인 분향소에는 2천80명이 헌화를, 1천85명이 추모글을 남겼다.

광주시 공직자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족들의 '돌봄 공백'을 메꾸는 데도 노력했다. 이번 참사는 가족 단위 희생이 많아 어린이와 노인 등 돌봄 사각지대가 우려됐다.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직후 무안국제공항에는 전국에서 5천509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았는데, 상당수는 광주시민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원봉사자들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밥과 국, 반찬을 만들어 유가족과 방문객에 전했다.

광주시는 여객기 참사에 따른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별도 평가나 조사 없이 통합돌봄을 제공했다. 청소와 세탁, 식사, 근거리 이동 동행, 아동 돌봄 등을 통해 유가족이 안심하고 사고 수습에 전념토록 했다. 그 결과로 지난 5일 기준 총 13가구(30여명)가 통합돌봄을 받았다.

이번 참사를 겪은 공동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광주시는 심리지원 교육을 받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가 140명을 투입해 유가족, 참사 목격자, 시민 등을 대상으로 심리 회복 또한 지원할 계획이다.

김영선 통합공항교통국장은 "무안공항이든 장례식장이든 현장에 있던 공직자들 모두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며 "처음에는 유족들이 갑작스럽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마음의 문을 열기 쉽지 않았지만, 함께 옆에 있으면서 어떤 작은 일이라도 해드리고 이야기하다 보니 나중에는 감사하다는 말까지 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과장님은 역할이 끝나셨는데도 안타까움에 날마다 무안공항으로 가서 유가족과 만나 소통을 했다"며 "모든 공직자가 온 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돼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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