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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살리거나 죽이거나···광주 아파트 변혁 늦지 않았다

입력 2024.01.09. 17:33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⑨·끝 에필로그
도시 미래상 철학·계획 부재 속 난개발
추후 재건축·노후산단 등 공급 불가피
거버넌스로 '다원적 상상력' 불어넣어야
광주지역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주택 10채 중 8채가 아파트인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조망 훼손 등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광주천 뿅뿅다리에서 바라본 무등산이 최근 지어진 아파트로 인해 가려져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아파트 혐오도시 광주, 공동주택 혁신하자 ⑨·끝 에필로그

"안타깝지만 인구 감소가 예정된 광주에서 아파트 건축 문화를 혁신하는 데는 다소 늦은 것 같네요."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조언을 구하던 차 취재원에게 다소 먹먹한 답변이 날아왔다. 무채색의 콘크리트, 성냥갑 대단지 등의 오명으로 점철된 광주의 수많은 아파트가 이미 들어설 대로 들어서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더 이상 손쓸 틈이 없어져 버렸다는 답답함의 토로일 것이다. '잘 만든 공간이 최고의 복지'라는 가치를 가지고 광주의 공간 변화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그 말이 더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앞으로 만들어질 거라도 잘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그렇기야 하죠."

반문할 수 있는 자신감에는 분명 근거가 있다. 아직도 광주에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수많은 낙후 주택단지가 있다. 옛 전남·일신방직 부지를 비롯해 금호타이어 공장 이전, 마륵동 탄약고 부지, 광주군공항 부지 등에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설 수밖에 없다.

1990년대부터 공장에서 찍어내 공급한 성냥갑 아파트들은 30~40년이면 녹물이 흘러나와 재건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남·문흥·상무·풍암·일곡…. 수많은 택지지구는 결국 '재건축'이라는 숙명에 놓여 있다. 최근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한 광주지역 곳곳을 뒤엎은 단칸방 '원룸촌'도 결국 대개조의 운명을 안고 있다. 차 하나 주차하기도 힘든 골목 골목마다 비집고 들어선 원룸들은 1인가구들의 '주거 상향' 꿈과 함께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공동주택이 지어진다. 관건은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단지 성냥갑이 간 자리에 또다시 같은 것이 오게 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왜 광주지역에서 '아파트 혐오'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를 혐오하게 되는 자화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광주 남구 아파트 밀집 도심 일대. 뉴시스

아파트는 죄가 없다. 오히려 콘크리트 기술이 인류에게 내려준 축복에 가깝다. 산업을 집적화해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사람이 모여 살면서 얻게 되는 유무형의 효과는 크다. 더 적은 공공인프라를 통해 더 많은 시민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 누릴 수 있다.

죄라면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그 속에서 주택은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과 계획의 부재다. 이는 누구만의 책임이라고도 할 수 없다. 먹고사니즘과 내 집 마련이 상당수 충족되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주거환경의 질과 도시의 품격, 나아가 세계 속의 도시와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주택을 혁신해야 한다는 '시대 정신'이 대두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갈 도시와 공동주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거버넌스'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거버넌스를 통해 거시적 도시계획이든, 미시적인 지구단위계획이든 도시의 미래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다원적 상상력이 도시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박홍근 나무심는건축인 대표는 "그간 광주의 도시계획에서는 행정과 기업만 있었고 나머지는 도시를 만드는 데 관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시민 거버넌스를 통해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인가, 광주의 도시 미래는 어떻게 가야하는가를 두고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인선 광주시 총괄건축가 또한 기고를 통해 "건축물과 도시를 만드는 과정이 민주적이고, 상향적이고, 시민참여적인 방식으로 이뤄졌을 때 광주다운 도시·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소 느리더라도 '긴 호흡'이 필요할 때다. 인기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남주인공 박새로이가 '내 계획은 15년짜리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낡은 방직공장터에서 주거·상업·산업이 융합된 세계 최고의 혁신 공간이 된 22@바르셀로나가 25년짜리 계획인 것처럼.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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