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그 벽 너머에 들불같은 ‘호남 민심’이 있다는 걸, 아는가?

최류빈 기자
업데이트 2026.06.12. 15:23
최류빈 취재1본부 정치·기획팀 기자

경호원 네 명으로 ‘벽’이 쳐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경선 문제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묻자, 말 대신 몸으로 화답한 거다. 뒤로 밀쳐지자 등허리가 아팠다. 그보다는 민주당 지도부가 호남 민심을 대하는 태도가 실체화된 듯해, 착잡함이 더 컸다.

12일 정 대표가 5·18 민주묘역에 이어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을 극도로 회피하는 행보를 보인 이유는 분명하다. 현 상황에서 삼십육계(三十六計)가 그나마 비책이라 생각해서일 거다. 5·18 민주묘역 참배 이후나 최고위 회의 이후, 모두 기자 질의응답 시간을 없애고 도망치듯 떠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 민심을 경청하러 왔다”던 공언이 궁색했기에 정 대표를 따라가며 연신 질문했다. 할 말 있으면 대변인실 통해 전해달라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힌다. 눈앞에 섰는데, 지역민의 우려에 즉답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기자를 한참 쏘아본 건 그때다. 나 역시 물러서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언론의 뒤에 320여만 통합시민이 함께 서 있어서다.

정 대표의 유구무언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민주당 참패·책임론은 이를 방증한다. “지도부가 뻔뻔하다”거나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최고위원들의 지적이 바로 그것. 민주당이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했고, 초대 통합특별시장 경선 과정에서 데이터 비공개·과도한 속도전으로 깜깜이 경선 논란을 빚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최고회의에서 위원들 간 공개 충돌이 이어진 데 대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 있는 민주당이 되면 좋겠다”며 애둘러 갈등을 봉합하려는 반쪽 리더십만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잡음은 끊길 기미가 없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정 대표가 출마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 정도다. 전날 의원총회에서도 전당대회 공정관리와 함께 대표직 사퇴 요구마저 나왔다. 실각의 위험 앞, 정 대표에게 ‘무언의 대답’을 들었다는 의미다.

기자는 묻고 정치인은 답할 뿐이다. 과오가 있다면 시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응당 정치인의 의무요, 그 갈증을 해소하는 매개가 되는 게 기자의 책무라면 책무겠다. 기자의 질문은 개인의 궁금증을 넘어 지역민의 여론을 대리하는 일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권력과 시민을 연결하는 공론장의 핵심 축으로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 모두가 일일이 나서 권력자에게 질문할 수 없기에, 언론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그가 말 대신 표정으로만 펼친 이 ‘팬터마임’이 호남 민심을 기만하는 서커스가 되어서는 안될 거다. 권력을 쥔 자가 책임정치라는 명분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온 호남 민심과 지역 발전의 염원을 위해서라면 더 그렇다. 정치인은 늘 당당해야 한다. 언론 앞에서 쥐구멍을 찾는 건, 시민의 질타를 피하고 싶다는 말과 다름 없다. 정 대표의 뒷모습에서 꺾여버린 호남의 회초리가 보였다는 의미다.

우리 서로 주어진 소임에 충실해보는게 어떨까. 기자는 그저 묻고 정치인은 시민들에게 답을 하자. 경호원으로 쌓인 검은 벽 너머에 들불 같은 호남 민심이 있다. 기자는 물었다. 정 대표는 언제 호남의 아우성에 답할 건가?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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