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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다짐' 종벌레라 호를 지은 일두 정여창의 실천 유학

입력 2022.09.29. 19:20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21. 함양역<중> 선비 정신과 산삼의 도시
함양 남계서원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21. 함양역<중> 선비 정신과 산삼의 도시 

역사 정신과 건강이 함께하는 고장

달빛 내륙 철도 시리즈는 우리나라 유학의 거봉들을 만나는 길이다. 광주에서 고봉 기대승을 만나고 담양에서는 기라성 같은 가사 문학의 원류와 인재들을 찾았다. 전북 순창에서 하서 김인후의 발자취를 따라갔고 영남의 관문 함양에서는 동방 5현의 한분으로 추앙받는 일두 정여창을 만날 차례다.

선비들의 고향 함양은 역사성 있는 산삼의 고장이다. 역사와 건강을 접목한 함양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산삼축제는 벌써 열일곱번째다. 함양은 달빛 내륙 철도 여정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고향같은 푸근함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함양 청계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56호 청계서원으로 지정되었다 임정옥기자

◆관직보다 학문 추구하는 선비 삶

일두 정여창은 함양이 낳은 실천 유학의 선구자다. 그는 1450년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일두라는 호는 '한 마리 종벌레'라는 뜻이다. 미물인 벌레를 호로 쓸 정도로 그는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았다. 평생 섬김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그의 부친은 세조에 반기를 든 이시애의 난으로 사망했다. 정여창 나이 17세였다. 정여창은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학문에 열중하던 중 함양 군수로 와있던 점필재 김종직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김종직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사림파를 형성해 훈구파와 대립한다. 김종직은 연산군 4년 제자 김일손이 제작한 '조의 제문'이 문제가 돼 부관참시 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이 사건이 무오사화다. 불똥은 제자인 정여창에게도 튀어 정여창은 유배당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는다.

함양에는 일두의 삶 궤적을 살필 수 있는 역사 자국들이 남아 있다. 함양군 지평리 일두 고택은 조선 사대부 집안 생활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정여창은 암울한 연산군 시대 상황에서도 관직보다는 학문을 추구하는 선비적 삶을 살아냈다. 그런 그의 삶이 조선 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실천 유학의 선구자라 일컬어지는 일두 정여창을 알려면 수동면 남계서원으로 가야 한다.

함양 남계서원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임진왜란 때 소실 1672년에 재건

수동면 원평리 남계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남계는 서원 근처에 흐르는 강의 이름이다. 서원에는 일두 정여창이 좋아하는 연꽃을 심어 연당이라 불렀다.

세계 문화유산 남계 서원은 일두 정여창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조선 명종 7년 1552년 건립을 시작해 1566년 남계라는 사액을 받은 우리나라 두 번째 서원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가 1672년 현재 위치에 재건된 곳이다.

남계서원은 입구부터 독특하다. 태극 문양의 홍살문이 서 있다. 서원 입구에 위치한 풍영루에 오르면 확 트인 전망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금세 이곳이 진정 명당임을 느끼게 한다.

서원의 루는 토론하고 시국을 논하던 곳이다. 당시 풍영루에서는 의식 있는 선비들이 암울한 연산군 시대를 어떻게 혁파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격식을 잘 갖춘 서원 건물의 원형

풍영루에서 바라본 남계서원은 격식을 잘 갖춘 서원 건물의 원형이다. 건물 양옆에 연못을 파 인위적인 배산임수를 만들어 놓았다. 맞은 편에 남계서원 현판이 보이고 양옆으로 동재와 서재를 배치해 균형을 이룬다. 뒤쪽으로 제사 공간인 사당을 배치해 건물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서원 한켠 묘정비에 남계서원의 설립 배경과 제향되는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 건물마다 이름을 붙여 쓰임새를 알리고 있는데 이름에서 품격이 묻어난다. 영매헌은 일종의 기숙사다. 기숙사를 영매헌이라 했다. 영매헌은 '매화를 감상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함양 남계서원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서원은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니 남계서원의 가장 중요한 곳도 공부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명성당(明誠堂)이다. 명성당은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진리를 향해 정진한 곳이 명성당인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사당이 나온다. 사당은 일두 정여창, 개암 강의, 동계 정원등 세 분의 선현들을 제향하는 곳이다. 남계서원은 서슬 퍼런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경상남도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원이다. 그러니 그 위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남계서원은 민간이 중심이 돼 서원을 만들었다는 점도 가치를 더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도 손색이 없다.

남계서원 뒤쪽 돌담과 함께 서 있는 소나무는 자연스럽게 굽어져 낮추되 기상을 잃지 않는 일두 정신을 닮아 있다. 선조들은 나무 하나에도 자연과의 일치를 꾀하면서 꿋꿋함을 잃지 않는 멋스러움을 달성해냈다.

함양 청계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56호 청계서원으로 지정되었다 임정옥기자

◆역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교훈

함양군이 자랑할 만한 선비의 고장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고장에도 '옥의 티'는 있다. 탐관오리의 전형 고부군수 조병갑이 함양 역사 인물공원에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긴가민가했다.

역사 인물을 평가할 때 절대선이나 악은 없다. 그래도 그렇지 조병갑은 아니지 않는가. 상림 역사 공원 표지석에는 조병갑이 모셔진 이유로 "역사적 사실 때문에 우리 군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선비정신과 구국정신이 강한 함양군에서는 역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사의 교훈이라는 점에서 보존하기로 하고 안내문을 설치하였다"고 했다.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뜻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함양의 선열들과 조병갑이 같이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조상들이 불편해할 것 같다. 일제 총독부를 철거하듯 조병갑 선정비를 뽑아 "함양 선열들과 함께 모시는 것이 부끄러워 이곳으로 옮겨놓았다"고 하면 어떨까 한다. 그것이 함양의 구국 정신이나 선비정신 구현에도 맞을 것이다. 아무래도 조병갑의 선정비는 역사의 교훈과는 거리가 먼 옥에 티다.

함양 산삼축제현장 전경

◆'Hi-산삼, 당신의 젊음을 응원합니다'

선비의 고장 함양은 고령사회를 겨냥한 항노화 산업에도 일찍 눈을 떴다. 선비의 고장이라는 전통 이미지와 우리나라 최대 산삼 자생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항노화 산업에 뛰어들어 중심 품목으로 함양 산삼을 키우고 있다.

함양 산삼은 높은 고도에서 찬 기운을 받으면서 자라는 데다 토양도 적합해 약효가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다 매년 산삼 축제를 유서 깊은 상림공원에서 열어 상림공원의 아름다운 자태를 알리고 500여 재배 농가 소득도 올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산삼 축제는 올해로 벌써 열일곱 번째다. 지난 9월2일부터 11일까지 열흘간 상림공원 일대서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Hi-산삼, 당신의 젊음을 응원합니다'였다.

함양 남계서원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에 지정되고, 2019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이에 앞서 함양군은 지난해 9월 '2021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한 달간 열린 항노화 엑스포는 함양 산삼의 우수성과 산삼 식품의 일반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산삼은 원래 산양삼(장뇌삼)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12년부터 산삼으로 공식화됐다. 그때부터 함양은 산삼의 고장으로 자리를 굳힌다. 여기에 관민이 힘을 합치면서 함양은 우리나라 산삼의 원조 자리를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초기 투자 5년, 시간과의 싸움" 산삼 귀농인들 후원자 

기종도 고려산삼영농조합 법인대표


"고랭지 기후와 화강암 토양에서 자란 함양 산삼은 약효가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산삼의 고장 함양에서 18년째 산삼을 키우고 있는 귀농인 기종도씨의 함양 산삼 예찬론이다.

기종도씨는 함양 산삼의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40대에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 함양으로 귀농했다. 그가 처음 귀농을 결심하고 산삼에 도전키로 한 것은 "전국 유일의 함양군청 산삼계가 있어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고 한다.

지난 2005년 귀농해 산삼을 키우려고 할 때 "산삼을 군에서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믿음이 갔다"고 말한다. 그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양 삼림에서 송이와 고로쇠를 채취했던 추억도 산삼을 택한 이유다"고 밝힌다. 여기에 함양은 토질이 산삼재배에 적합했다. 함양군 800m 고지에서 재배하는 그의 산삼은 화강암 토질에서 재배해 약효가 뛰어나다. "화강암은 부식하면 식양토가 돼 약성과 향기를 높인다"는 것이 그의 산삼재배 비법이자 지론이다.

기씨는 산삼 귀농의 어려움으로 최소 수년간 소득 없이 키워야 하는 초기 투자를 꼽는다.

"최소 5년 이상 키워야 하는 산삼 특성상 시간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씨는 산삼 귀농자들의 후원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줄여주기 위해 기씨는 함양산삼아카데미를 열어 산삼 재배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애환을 같이 했다.

산삼 유통센터를 운영하고 함양산삼축제가 자리 잡는데도 기씨의 역할이 컸다.

기종도씨는 "함양은 사통팔달 교통이 잘 발달된 지역으로 달빛 내륙철도가 개통되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다"면서 "산삼 재배 농가의 미래 세대 교육을 위해서도 달빛 내륙 철도가 차질 없이 건설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는 현재 15만평 규모의 산삼밭을 일구는 대단위 산삼 재배농부이자 함양 산삼 귀농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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