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서두르지 말라' 그림자도 쉬어가는 풍류가 아니던가

입력 2022.06.23. 17:51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
⑧담양역 <상> 풍류 여행 1번지
담양 소쇄원은 조선 중기 양산보(1503~57년)가 세운 별서정원이다. 22일 푸른 신록이 우거진 소쇄원의 풍경이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광주에서 대구까지 미리 달려본 달빛내륙철도⑧담양역 <상> 풍류 여행 1번지 

송강 정철 가사기행 따라 걷는 길

문학만 이야기 해도 며칠은 걸려

조선 선비들 수준 높은 정신문화

천년 노송 앞에 욕심들 내려 놓고

대나무 처럼 곧게 살겠다 다짐해


◆스토리텔링 많아 영호남 가교 역할

달빛 철도가 연결되면 담양군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아마도 담양은 영호남 가교 역할을 하는 이야기 고장이 될 것이다. 오늘날은 고장마다 스토리텔링으로 여행객을 모은다. 그렇다면 담양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장이다. 문학만 이야기하는데도 며칠은 족히 걸린다. 송강 정철의 발자취만 따라가도 이야기꽃이 만발한다. 송순의 면앙정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달빛 철도가 연결되면 담양은 이야기의 중심 고장이 될 수밖에 없다.

담양은 전라남도 중북부로 광주시에서 보면 동북쪽에 위치한다. 인근 순창군과 도계를 이룬다. 담양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본래 백제(百濟)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는데 신라때 추성군(秋成郡)이라 바뀌었고 고려 성종 14년 (995)에 담주도단련사(潭洲都團鍊使)를 두었다가 후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나주에 복속되었다"라고 전한다. 현재 담앙군은 담양읍을 비롯해 고서·금성·남·대덕·무정·대전 ·봉산·수북· 월산·용· 창평면 등 11개면으로 이뤄져 있다. 남면은 2019년 가사문학면으로 개칭했다.


◆"영남은 도학, 호남은 문학이다"

담양 풍류를 들여다보려는데 슬쩍 지나칠 요량이면 처음부터 풍류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담양은 그런 곳이 아니다. 담양은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맨얼굴을 보여주는 곳이다. 한국의 풍류를 대표하는 담양에 와서 서두름은 조상들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다. 그림자도 쉬어가는 곳이 담양이다.

흔히 조선시대 특징을 논할 때 "영남은 도학이요, 호남은 문학이다"고 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퇴계 이황(1501~1570)과 눌재 박상(1474~1530)이다. 이황은 성리학을 대표하고 문학은 눌재 박상을 시작으로 시가문학의 정점 송강 정철(1536~1593)을 일컬음이다. 그래서 담양 풍류기행하면 송강 정철의 풍류기행을 따라 걷는 길이라 해도 괜찮다.

사실 풍류(風流)라 하면 시덥잖은 양반 놀이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담양에서 얘기하는 풍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엄연한 역사요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다. 신라 최치원은 풍류를 도라 칭했다. 최치원이 말하는 "중생을 교화하는 풍류" 정도는 아니라해도 담양 풍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수준 높은 정신문화다. 그중에서도 담양은 조선 선비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심지로서 "대한민국 풍류 1번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의 조화를 꿈꾼 조상의 지혜

담양군 가사문학면에는 소쇄원(瀟灑園)이 있다. 예전 남면이다. 그런데 소쇄원 입구는 어디나 다 있는 문이 없다. 그저 키 큰 대나무들이 서로 부대끼며 서걱대다 손님을 맞는다. 대숲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소쇄원이다. 입구에 대나무를 심은 것은 대나무처럼 곧게 살겠다는 주인의 의지 표현이다. 인공적인 것이 전혀 없는 듯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인공적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소쇄원은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이 함께 논다.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한다. 흐르는 물을 붙잡지 않는다. 돌 하나에도 자연의 조화를 꿈꾼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는 조선원림의 진수다.

소쇄원 주인 양산보는 창평에서 태어나 15세에 정암 조광조 문하생이 되었다.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귀양살이 하러 떠나자 제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그도 화순 능주로 따라 간다. 화순 능주에서 스승 조광조가 끝내 사약을 받고 스러지자 그는 문득 깨닫는다. 모든 것은 헛것이고 부질없다는 것을.

소쇄원 주인 양산보는 벼슬살이의 무상함을 보고 스스로를 소쇄옹이라고 칭하고 세상과 담을 쌓는다. 거처를 소쇄정이라 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니 벼슬살이 같은 것과는 인연을 끊고 깨끗하고 거침없이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소쇄원은 약 1천400평 규모다. 계곡을 낀 야트막한 야산에 조성돼 중심에 '광풍각(光風閣)'이라는 정자를 짓고 위쪽 양지바른 곳에 제월당(霽月堂)이라는 사랑채를 배치해 집주인 노릇을 하게 했다. 광풍각과 제월당은 인간과 선계를 구분 짓지 않고 스스로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배려다.

흙돌담 밑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에 인공적인 기술을 부려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했다. 자연과 사람의 솜씨가 어울려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소쇄원의 물은 돌과 담을 끼고 돌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웅덩이에 모였다가 작은 폭포가 돼 꽤 큰 연못을 이루다가 소쇄원 밖 자연세계로 떠난다. 모였다 흩어지는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다.

소쇄원의 가치는 사람과 자연의 조화에 있다. 사람이 손기술을 넣되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달빛 철도가 열리는 날 소쇄원은 부자유스러운 인간 세상에 죽비를 내려 경고할 것이다. 너희들은 어찌해 이작은 나라를 동서로 갈라 자연스러움을 거역했는가. "빌어먹을 놈들… 썩 물렀거라."


◆세상 온갖 근심·걱정 없애 버려

정철의 처외당숙 서하당 김성원은 1560년 중앙 정계를 은퇴하고 낙향한 장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서 환벽당 건너편 성산 언덕에 아담한 정자를 지었다. 식영정(息影亭)이다. 그림자가 쉬는 집이다. 그윽한 자태와 빼어난 자연미, 그에 따르는 스토리로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최고봉이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그림자가 쉬어가는 곳이라니 그런 집도 있나 할 것이다. 정자 주인 김성원은 정자이름을 뭐라 할까 고민했다. 그때 떠오른 게 춘추 전국시대 도인 '장자'였다.

장자 어부편에는 "자기 그림자를 보고 겁먹고 내달리는 자가 있었다./ 떼내려고 내달릴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쉬지 않고 달리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발자취가 없어진다는 것을 몰랐으니 어리석다"/ -어부(魚父)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이가 있었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다. 헛것을 보고 부리나케 놀란 것이다. 그 헛것이 명예든, 돈이든, 권력이든 상관없다. 인간이 그런 헛된 것을 좇다가는 끝내 죽게 된다고 장자는 말한다. 그러니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된다. 김성원은 아예 그림자를 쉬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영정은 1560년(명종 15) 서하당 김성원이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이었던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소나무와 배롱나무로 울창하게 둘러싸여 있는 식영정은 팔작지붕의 정자로서 2칸의 방이 후면에 있고 마루는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과 함께 어울려 끝없이 거친 들에서 놀고자 함이다"고 설파한다. 최고의 정자 주인이 되려면 이 정도의 풍류 감각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도인의 경지에 들어선 김성원은 그림자를 쉬게 해서 쓸데없는 근심거리를 근원적으로 없애 버렸다. 그림자가 쉬는 정자 식영정은 그렇게 탄생했다.

송강 정철은 다음과 같이 식영정을 소개 한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

식영정은 광주호 끝자락 별뫼라는 성산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다.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골기와 팔각지붕에 한 칸짜리 서재와 넓은 툇마루로 구성돼 있다. 식영정은 아름드리 노송이 에워싸고 있다. 소나무처럼 살다 가려는 주인의 의지다. 지금도 식영정 입구 천년 노송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림자를 쉬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름 잔잔한 광주호 호숫물이 시원스럽다. 광주호 호수는 예전 정자를 오가던 분들은 볼 수 없는 풍광이었다. 물과 바람, 산이 어우러진 지금 모습은 순전히 인위적이다. 식영정 뒤뜰로 돌아서면 배롱나무 몇 그루가 예전에 흘렀다는 작은강 자미탄의 옛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한다. 오늘날 식영정은 쉼 없이 달려오는 현대인들에게도 좋은 쉼터다. 그러면서 "그림자도 쉬어가니 당신도 이제 좀 쉬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정자에 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 찍기에 바쁘기만 하다. 제발 그림자의 쉼만은 방해하지는 말라.

나윤수 객원기자 nys2510857@mdilbo.com

#이건 어때요?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4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

달빛고속철도 주요뉴스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