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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④동명동] 세월을 간직한 동네, 걷고 싶은 거리가 되다

입력 2021.03.04. 17:50
지금은 카페로 변한 구 토방건축사사무소의 사옥. 길과 면해 비워진 마당은 거리와 조우하며 걷는 이에게 풍부한 공간감을 걷는 이에게 선사한다.

광주의 '걷고 싶은 거리' 대명사가 된 동명동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필자에게 동명동은 너무나도 애정이 가는 동네이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동명동에 있는 건축사 사무소였다. 한옥을 리모델링하고 일부를 증축해 사용하던 사무실이었다. 지금은 옛것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시각도 늘었고, 보존하면서 발전시켜 재사용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이지만 20여년 전에는 그런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은 시대였다.

오랜만에 찾은 추억 가득한 옛 사무실은 찻집으로 변해, 동명동이 문화 가득 걷고 싶은 동네로 변모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동쪽으로 작은 도로와 접해 차 한 대가 겨우 주차되는 남쪽 주차장 공간은 담장 밑에 장미 넝쿨이 심어져 계절의 변화를 가로에 전달했고, 쉬는 시간 그곳은 햇볕을 쬐고 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담소의 장소였으며,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는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서정 가득한 작은 쉼터이기도 했다. 그 공간은 찻집의 외부 테이블 공간으로 변했지만 지금도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며 길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구 토방건축사사무소 사옥의 다락공간. 한옥 부재의 목재미와 함께 아늑한 공간미를 느낄 수 있다. 좌측면과 정면의 측창으로 나즈막한 동네의 하늘과 길 등 외부공간들을 볼 수 있다.

내부 공간 역시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이 건축물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다락 공간은 응접실과 시각적으로 조우하며 입체적인 공간감을 연출한다. 너무나도 안락한 공간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수행하던 프로젝트를 체크 받기도 했던 장소였다. 측면에 설치된 측창에 앉아있으면 나지막한 동네와 하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다락공간에 올라가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테이블에 앉아 아늑한 공간감을 느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길과 접한 쪽 다락의 측면에 앉아 창밖을 한참 동안 바라 보았다. 길 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주변의 낮은 건물들과 마당들이, 또 하늘이 입체적으로 한눈에 다가온다.

사무소를 다니던 우리들에게만 체험의 기회가 주어졌던, 도시와 조화된 이 멋진 건축 공간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형태와 공간감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많은 이들에게 건축의 공간이 갖는 매력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에 한옥을 보존한 건축사의 혜안이 새삼 존경하는 마음으로 돌아온다.

한옥을 리모델링 했던 구 토방건축사사무소 사옥 너머 새로운 형태와 물성을 사진 신축 상업건축이 보인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가로의 크기에 맞게 적절히 조화되며 활기 넘치는 장소가 되고 있다.

한옥을 나와 모퉁이를 지나자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신축 건축물이 보인다. 차와 맥주를 파는 백색 단층 박공형태의 건축은 잘 디자인된 건축공간이 느림의 미학이 깃든 도시와 만났을 때 주는 감동을 여실히 보여주며 공간의 속도를 줄인다. 맞은편의 3층 노출콘크리트 건축은 기존 주거 블록 중 몇 채의 건축물을 허물고 지었으리라 생각이 드는 건축이다. 순간 '동명동의 건축들은 웬만하면 일부 증축을 하거나 리모델링을 했으면 좋으련만 또 새로운 도시적 환경이 생기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규모라든가 입면에서 보이는 오픈공간, 수평 수직 요소들이 분절되고 비례감 있게 디자인돼 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동명동과 이타적이지는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건축가의 본능일까. 내부공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1층 진입부에 접어들자 내부의 공간미가 실로 대단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장식이나 마감 하나 없이 노출된 콘크리트의 물성과 구조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트랜디한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축물은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중정 공간을 갖고 하늘을 향해 열려있다. 1층과 2층을 적절히 오픈시켜 시각적으로 연결시키고 몇 개의 기능적인 레이어들에 의해 생기는 공간들은 동명동을 향해 적절히 열리고 닫혀있다. 밀도가 낮은 동명동의 하늘을, 자연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도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이곳은 자본가의 상업적 마인드와 건축가의 창의성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도시를 배려하고 조화롭게 하는 건축공간 디자인 기법들이 적용돼 동명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훌륭한 장소성을 창출하고 있다. 동명동을 찾는 젊은이들의 소통 공간이며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이 장소는 느림의 태생적 공간을 유지한 도시가 매력적인 건축공간과 만났을 때 주는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동네의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새로 지어진 적정 높이의 열린 건축. 내·외부 공간이 길과 소통하고 있다. 내부의 공간과 사람의 행위들이 보여져 지나가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

동명동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 중앙도서관 근처에 다다랐다. 지산동에서부터 필문대로와 푸른길공원을 교차해 곡선과 직선의 형태로 흐르며 동명동 메인 거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동계천로. 보행의 흐름이 가장 많은 곳이자 위상학적 위치로 차량의 통행도 가장 많은 곳이다. 보행자가 많은데도 차가 씽씽 달린다. 자동차 통행속도를 일정 속도 이하로 제한하고 바닥의 패턴을 동명동스럽게 디자인해 보행자들이 차량에 의한 스트레스 없이 동명동 길 위의 많은 볼거리, 들을거리, 즐길거리들을 느끼며 걸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캐나다의 도시설계학자 제인제이콥스는 1961년 발간한 그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에서 '길이 아름다우면 그 도시도 아름답다. 길이 따분하면 그 도시도 또한 따분하다'고 언급했다. 가로, 보도, 공원이 인간의 활동을 담는 용기이며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는 장소로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길과 건축이 조우하는 아름다운 장소들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게 하며 도시에 지속성 있는 생명력을 준다. 감동을 주는 장소들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이다.

동명동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편식 중이다. 그러나 문화DNA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곳 저곳의 골목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며 길이 아름다운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기존 도시의 맥락을 간직한 채 조금씩 변화해가는 기존의 건축들과 신축되는 건축이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장소성을 제공,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걸을 만 했던 거리가 다양한 문화가 스며드는 더 걷고 싶은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길의 넓이에 적정한 휴멘스케일의 건축과 외부 공간들이 적정하게 조화돼 거리가 변화하고 있다. 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호기심 넘치는 경험들은 사람들이 걷고 싶게 하는 아름다운 길의 다양한 요소이다.

우리는 문화 생산의 주체이며 동시에 소비 주체이다. 좀 더 다양한 문화 DNA를 동명동에 뿌리내리게 해 주거와 상업, 예술이 일상 속에 함께하는 좋은 장소들로 가득 찬 지속성 있는 동명동이 되기를 바란다. 정영법 로운건축사사무소 대표

정영법

사람들이 살만한 장소성을 갖는 도시공간에 대해 탐구하는 건축가다. 인간의 스케일에 맞는 여유롭고 정감 있는 건축이 길과 조우하며 만들어내는 장소들이 가득한 도시를 고민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하기에.광주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로운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로 구례목재문화체험장, 구례웨이트트레이닝센터, 남구마을공동체협력센터, 오방 최흥종 기념관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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