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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입력 2022.06.08. 18:35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호남 3대 명촌, 나주 금안동
고려말 왜구 물리치던 정지 장군
세종대왕 한글 창제 도운 신숙주
원 황제에 황금안장 받은 정가신
어려울 때도 나쁜사람 하나 없고
굶으면 서로 식량 가져다준 마을
생태 숲 꽃처럼 사람마다 웃음꽃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호남 3대 명촌, 나주 금안동 

 금안동, 왜 호남 3대 명촌일까. 의문을 품고 마을을 돌다.

 나주(羅州)를 대표하는 금성산, 금성과 나주는 동명 이음이다. 그 산자락 아래, 숲이 우거진 마을, 새들이 안식처라는 금안동이 자리하고 있다. 나주에는 나주, 영산포, 남평, 봉황, 금천 등 곳곳이 좋은 길지인데 왜 이곳 금안동을 호남 3대 길지(吉地) 명촌이라고 할까. 

 금안동은 큰길에서 바로 몇 걸음 들어가니 한옥으로 지어진 금안관과 명촌관, 신숙주 작은 도서관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이 제법 넓고 잘 꾸려졌다.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늙숙한 주민 두 분이 노인회관 잡초작업으로 분주하다.

신숙주 작은도서관 

◆사당에 모신 장군이 마을 지켜준 듯

마을 입구에는 인물을 소개하는 빗돌이 세워져 있다. 가장 낯익은 이름이 신숙주(申叔舟) 선생이다. 오 형제 중 셋째로 이 마을 출생이라는데 맹주 중주 숙주 송주 말주, 이름에 그 시대가 담겨있다. 오룡동은 다섯 형제를 일컫는다.

금안리 마을입구

신숙주는 세종대왕에게 발탁된 집현전 8학사 중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가장 이바지한 사람이다. 일본어, 중국어, 여진어와 몽골어 등에 능통하여 여러 언어의 음운과 어휘 등 언어학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를 세종이 놓칠 리 없다.

신숙주 선생이 없었다면 한글 창제가 가능했을까 생각하니 이 한글 마을이 더 정겹게 다가온다. 다만 한글 마을이니만큼 한글을 잘 이용하여 집을 짓고, 자음이나 모음을 활용하여 담을 쌓거나 한글을 소재로 한 벽화를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금안동 지명 유래와 관련된 설재 정가신 선생과 정지 장군, 풍산 홍씨와 서흥 김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경렬사

반송이 우거진 숲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을 중앙에 사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지 장군을 모신 경렬사(景烈祠)다. 고려 시대 광주와 담양 일대에서 활개를 치던 왜구를 물리쳤으며, 고려말에는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들이 타고 온 배 17척을 파괴하고 2천여 명을 사살하는 등 관음포 대첩을 이끈 이 마을 출신 장군이다. 현재 우리 해군의 잠수함인 정지함은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광주 북구 석곡동에도 있는 경열사보다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정지 장군을 모시고 있지만 어쩌면 장군이 800여 년을 뛰어넘어 마을 사람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어 명당이고 명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렬사 맞은편에 척서정은 만석꾼이자 효자 정해일(1858~1925)이 지은 정자이다. 척서(陟西)는 서쪽 산, 곧 '백이·숙제가 수양산을 오른다'는 의미로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숙주 생가 

신숙주 생가터는 금안천이 휘돌아 나오는 곳에 있다. 몇 해 전 혼자 살던 할머니가 작고한 이후 빈집이란다. 숙주는 당시 요동에 유배 중인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을 열세 번이나 찾아가서 음운과 언어학을 주제로 토론하며 한글 창제에 힘을 기울였다. 유비의 삼고초려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마당과 대밭 그리고 뒤란 너머 시내는 다섯 형제가 뛰어놀기에 부족경렬함이 없어 보인다.

금안리 고방터

마을 좌측 생태숲 출구에 과거급제를 알리는 임금의 교지를 수령을 하는 고방터가 남아있다. 이것만 보아도 이 마을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대부분 누각(褸閣)이 되었지만 조선 시대 우리 역사의 중심인물이 이곳에서 자랐다고 생각하니 이곳 지세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말이 필요 없는 살기 좋은 마을

반송마을 입구에 소개된 금안 8경.

반송마을 입구에 금안 8경을 소개하고 있다. 훌륭한 문관과 무관을 배출한 마을은 뭔가 다르다. 금성산 산줄기가 뻗어 나와 도톰하게 언덕을 이룬 마을, 그리고 아래로 흘러내려 영산강 승촌보까지 거침없이 이어진 풍광, 좋은 풍광을 보고 자랐으니 응당 사람들의 심성은 물론 마을 인심도 좋았을 터이니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안면(老安面)은 지명 그대로 노인이 살기 좋은 고장이다. 원래 숲이 우거진 날짐승의 낙원이란 금안동(禽安洞)이었으나, 고려말 설재 정가신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돼 큰 공을 세우고 황제 쿠빌라이로부터 '황금 안장' 곧 '금안'을 하사받고 돌아왔다고 해서 금안동(金鞍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인천마을

광곡, 반송, 인천마을 이름을 고려하면 맑은 계곡(광곡·光谷) 아래로 소나무 숲이 우거진(반송) 마을이 있고, 그 숲을 울타리 이내로 물이 흐르는 이내촌(인천)이 있다는 의미 관계를 보면 새들이 살기 안성맞춤인 고장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사람 살기 좋은 마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주 쌍계정 

반송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쌍계정(雙溪亭)이 있다. 정가신이 1280년 세운 정자이다.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현판도 보인다. 신숙주(申叔舟)·신말주(申末舟)와 정서(鄭鋤)·김건(金鍵)·홍천경(洪千璟) 등 당대 대표적인 학자들이 이곳에서 공동의 규약인 대동계를 결성하여 미풍양속의 전통을 실현하고 학문을 토론한 뜻을 계승하기 위해 4대 문중 후손들이 1957년에 걸었다. 예전에는 마을 행사 대부분을 이곳에서 치렀단다.

나주 금안동 생태숲

'쌍계정' 양쪽으로 금성산 계곡물이 흘렀을 터이지만 지금은 아쉽게 한쪽 물길을 잃었다. 정자에 앉아 마음으로 또 한쪽 물길을 상상해보니 아름다운 마을이 더욱 새 둥지처럼 편안해진다.


◆사는 사람들이 좋아야 '길지' 아닌가

어깨를 넘지 않은 낮은 담들 너머로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보인다. 고샅을 걷는데, 오래된 방앗간 앞에서 할머니들이 이방인을 반긴다. 대부분 90을 넘긴 할머니들이지만 표정이 아이처럼 밝다. 어쩜 내가 궁금한 마을인데, 이분들 또한 내가 궁금한 모양이다. 마을이 좋아서 왔는데, 할머니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나그네를 좋아하는 표정이다.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50년을 살았고, 몇 해 전까지 서륜당에서도 생활했다는 할머니는 이 마을에 산 것이 마냥 행복했단다. 어려운 때에도 나쁜 사람 없었고, 누가 굶으면 서로 식량을 가져다주고 나눠 먹었다며, 예나 지금이나 다투는 소리 한번 나지 않은 마을이란다. 지금도 외지인이 자꾸 들어와 살려고 하는 마을이라니, 가히 명당 길지 운운할 만하다. 무엇보다 사는 사람이 좋으니 그보다 더 좋은 명촌이 어디 있겠는가.

금안리 생태숲

월정 서원을 지나 가재골을 따라 금성산 생태숲도 좋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가득하다. 생태숲 입구와 출구 모두 금안마을에 있다. 생태숲 가는 길에 금안 저수지는 한 폭의 그림이다. 녹음을 담은 수면에 몸을 풍덩 담그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산길 굽이마다 아카시아와 오동꽃이 만발했다. 생태숲에는 아이들 깔깔거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마을에는 노인들뿐인데, 이 골짜기는 젊은이들 낙원이다.

연록의 숲, 솔숲을 헤치고 나오는 바람과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마음이 절로 흥겹다. 산 좋고 물 좋고 거기다가 노인이나 젊은이들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호남 3대 명촌이라기보다 진짜 대한민국 최고의 명촌마을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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