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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아동학대, '미필적 고의' 살인

@김영태 입력 2021.01.17. 17:50

정인이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오래된 경구가 무색할 정도다. 저출산과 인구 급감으로 한민족 소멸까지 우려되는 나라에서 어린이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초 생후 8개월째에 입양돼 같은 해 10월 사망 당시 정인이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의료계가 추정한 사인(死因)은 췌장 파열과 복부 손상. 췌장 파열로 인해 성인 남성도 견디기 어려운 격통 끝에 사망에 이르렀을거라고 보았다. 쇄골 골절과 팔, 갈비뼈 등에서 다발성 골절도 발견됐다. 정상적인 양육하에서는 이같은 참혹한 부상이 절대 나타날 수 없다는게 의료계의 소견이다.

그토록 참담하게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첫재판이 지난 13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3부 심리로 열렸다.

경찰과 검찰은 정인이의 죽음을 초래한 양부모의 죄책을 두고 고민했다. 애초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기소됐던 상황에서 '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양부모가 정인이에게 가했던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형법 이론상 '고의'는 범죄를 구성하는 주관적 요소로 범죄 또는 불법행위의 성립 요소인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즉, 자기의 행위가 일정한 결과를 발생시킬 것을 인식하고 또 이 결과의 발생을 인용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은 원칙적으로 고의의 경우만 처벌하고 과실은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제14조).

고의가 확정적이라면 '미필적 고의'는 불확정적 고의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고의'에 해당한다. 검찰은 아동학대 처벌법상 '살인'을 주위적 공소사실, '아동학대치사'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에 양모 장씨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의 공소 요지를 부인하고 나섰다. 일정 부분 학대를 인정했지만 사망에 이르게 할 학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사랑의 매'라는 명분으로 과도하게 행사되는 민법상 부모의 훈육권 조항(제915조)을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인이 양모의 죄책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한 검찰의 기소에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태 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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