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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대통령의 편지

@윤승한 입력 2020.10.15. 18:15

"내게 보낸 편지를 아픈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너무나 절절히 배어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습니다.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북한군 피격으로 숨진 어업지도원 A(47)씨 아들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냈다. "아빠의 명예를 돌려 달라"고 호소한 A씨의 고교 2학년생 아들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한다.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버지 일로 많이 상심하며 걱정하고 있다"고 위로의 뜻을 적었다. "진실이 밝혀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묻고 억울한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도 함께 전했다.

이 한통의 편지를 두고 난데없이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유가족이 실망감을 나타내고 야당이 편지 작성 형식을 문제삼아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서면서다. A4용지 1장 분량의 이 편지는 타이핑으로 작성됐고 편지 끝엔 대통령 서명이 찍혔다. 국민의힘측이 이 형식을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국민의힘은 지난 13일 논평에서 "타이핑된 편지는 친필 사인도 없는 무미건조한 형식과 의례 그 이상도 아니었다"고 혹평했다. 같은당의 한 당협위원장은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A씨의 형은 "좀 더 새로운 내용이 많이 담길 줄 알았는데 그간 들었던 내용이라 약간은 실망했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 사실이 알려진 직후 네티즌들이 들끓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편지 내용의 본질은 온데간데 없이 공이 엉뚱한 곳으로 튄 것이다. 국민의힘이 여론몰이를 의식했었다면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이 편지는 보여지는 그대로 위로 편지다. 어떤 정략적 의도가 아닌 아버지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어린 학생의 마음을 도닥이려는 한 어른의 마음이 담겼을 뿐이다. '실망스럽다', '진정성이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 하등의 이유가 없다.

타이핑 편지가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답장을 하지 않은 편이 나을 뻔했다. 대통령이 상처받은 국민에게 위로편지 한통 마음놓고 쓸 수 없도록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참 씁쓸하다.

윤승한 논설위원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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