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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시선 뒤 숨겨진 80년 여름 이야기

입력 2022.12.02. 19:25
지맵 이이남 특별전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가보니
건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구성
시골 국민학생의 평화로운 일상
엄혹했던 5월 광주 상황 대비되며
당시 어린아이의 공포감 고스란히
영상·조각·소리 조화 집중도 높여
이이남 작 '책 읽는 소녀'

지맵(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 입구에 들어서니 책 읽는 소녀 동상이 보인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운동장 등 교내 곳곳에서 볼 수 있던 동상 중 하나다. 우리를 맞이하는 이 소녀상은 마치 관객 손을 잡고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것 같다. 지맵이 특별전으로 기획한 이이남 작가의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의 시작점이다.

이이남 작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

우리를 유년시절로 데려가는 이 소녀상은 전시를 관통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책 읽는 소녀 뿐만 아니라 달리는 소년 동상 등이 관객을 반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시는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 조각들이다.

작가는 지맵 건축물을 하나의 인격체, 즉 자신으로 보고 이 전시를 꾸렸다. 입구 또한 놓치지 않고 관객이 건물로 입장하는 순간을 작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오도록 연출했다.

관객이 접속한 작가의 기억은 그가 국민학교 5학년이던 화순의 1980년이다. 날씨가 화창하던 5월, 왜인지 마을에 버스가 다니지 않고 학교도 열흘 동안 쉬던 그때다.

이이남 작 책 읽어주는 소녀

"아무것도 모르던 국민학생 시절엔 간첩이 넘어온 일로만 알았어죠.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겁만 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가 5·18이었던 거죠.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80년 5월 18일 날씨 맑음'이라 단정히 쓰인 글자 아래 놓인 작은 문을 통과하자 시끄러운 소음 사이로 횃불을 들고 달리는 소년 동상이 보인다. 이 소년을 향해서는 40여대의 선풍기들이 뛰노는 아이들의 사진, 상장 등을 매단 채 마치 헬기 소리 같은 소음을 내며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평화로운 일상과 헬기 소리가 대비되며 긴장감을 준다. 헬기 소리와 함께 공간을 채우는 또다른 소리인 김추자의 '꽃잎'과 소년이 들고 있는 횃불만이 헬기와 같은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뿐이다.

이이남 작 뿌리들의 일어섬

2층에는 전쟁과도 같던 상황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평화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군것질을 하기 위해 아버지의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던 기억, 어머니가 싸주시던 노란 양은도시락, 농사하던 아버지가 쌓아놓은 볏단이 놓인 밤풍경….

그 한 가운데에는 유난히 어릴 적 죽음과 관련한 꿈을 자주 꾸던 작가의 꿈이 펼쳐진다. 책 읽는 소녀상이 그의 꿈 이야기를 낭독해주는 이 작품은 엄혹했던 70~80년대의 분위기가 어린 아이의 내면에 어떤 방식으로 침투했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화려한 색의 작품은 어린 아이가 느꼈을 공포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3층은 이러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던 아이, 그리고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서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많은 군중에 부활을 상징하는 피에타상으로 희망을 전한다.

이이남 작가는 "자전적 경험을 통해 역사적 아픔과 일상적 삶의 대비를 극대화했다"며 "과거 기억의 파편을 현재와 결합해 층마다 컨셉을 갖고 구성, 마지막엔 어릴 적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던졌던 인생이란 질문에 답을 담아봤다. 관객들이 아이의 시선 뒤 감춰진 많은 이야기를 체감하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4월 30일까지.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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