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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주마저···' 고통 속에 죽음 맞는 5·18 유공자들

입력 2021.02.22. 15:00
파킨슨병으로 몸을 제대로 운신도 못하고
최근까지도 ‘나는 간첩 아니다’ 악몽 시달려
설 지나 결국 급성 질환으로 한 많은 생 마감
타지역 거주 및 중증 환자에 대한 관심 필요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전옥주(전춘심)씨 유해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전씨는 5·18 당시 시민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 방송으로 항쟁을 이끌었다. 2021.02.19. 

"광주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 우리 형제 자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으로 광주 시민들을 결집시켰던 고 전옥주(향년 72세)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5·18 유공자들이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 속에 한 많은 삶을 작별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16일 사망한 전씨의 안장식이 추모객들의 애도 속에 열렸다.

5·18 부상자회 이지윤 전 사무총장은 추모사에서 "이 무슨 청천벽력의 비보인가. 이렇게 황망하게 보내 드려야 합니까. 참으로 한 많은 세월 이 생에서 겪은 가슴 시린 기억은 모두 훌훌 털고 영면하소서"라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전씨의 삶은 실로 고통으로 점철됐다. 1996년 전씨가 한 매체를 통해 털어 놓은 참혹한 고문의 기억은 5·18 이후 그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음을 짐작케 했다.

당시 수사 당국은 전씨를 북한 모란봉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남파된 간첩 '모란꽃'이라고 조작하고자 고문을 가했다. 전씨는 "총 개머리판과 나무자로 마구잡이로 후비고 짓찧으면서 차마 들을 수 없는 폭언을 했다"며 "사흘째에는 하혈까지 했으나 수사관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고 자신이 겪은 고문을 전했다.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전옥주(전춘심)씨 유해 안장식이 열린 가운데 유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전씨는 5·18 당시 시민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 방송으로 항쟁을 이끌었다. 2021.02.19.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전씨의 고통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고문에 시달리는 악몽을 꾸며 "나는 간첩이 아니다"고 소리치다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글 한 편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평정심을 찾기 어려웠다.

급기야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까지 덮쳤다. 손과 발이 마비되면서 제대로 걷기도,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파킨슨병 치료약을 복용하느라 혀까지 통증에 사로잡히며 식사도 어려웠다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이처럼 병세가 심각했으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 곁에서 지냈다. 병실에 지내는 것이 갇혀 지내는 느낌이라 거절했다고 한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움직이다가 오히려 넘어져 다치는 일이 잇따랐다. 무엇 하나 자기 의지로 하기 어렵던 전씨는 자주 고통을 호소했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지인과 통화하며 괴로움을 토로했고 명절에 언니를 보러 오겠다던 오월어머니집 어머니들과의 만남 약속도 뒤로 미뤘다. 결국 전씨는 설이 지난 16일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5·18 유공자 중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전씨처럼 타 지역에 거주하는데다 평생에 걸친 심각한 상처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9월에는 5·18 유공자 정병균씨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고, 2018년 5월에도 대구에서 거주하던 5·18 유공자 권순형씨가 고문 후유증으로 고독사했다.

한 5월 단체 관계자도 "치유가 어려울 정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고문 후유증을 겪는 이들이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며 "중증 환자들이 평안 속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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