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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경륜으로 빚어낸 사랑과 그리움

입력 2023.02.08. 11:05
양성우 시인 18번째 시집 '꽃의 일생' 출간
자연과 한몸돼 쓴 생태시 수록
건강한 우주적 삶 순환 형상화
생과 사의 대자연 섭리 펼쳐내

독재 저항시집 '겨울공화국'으로 잘 알려진 양성우 시인이 18번째 시집 '꽃의 일생'(일송북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시편들이 담겨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순정한 첫 마음을 그대와 삼라만상 앞에서 무릎 꿇고 정갈하게 부르는 노래다. 거듭거듭 정갈하게 바쳐져 시 자체가 노래가 되는 연가(戀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제 많은 시편이 가곡으로 작곡돼 불리며 대중의 가슴에 뭉클하면서도 유장한 감동을 주고 있다.

양 시인의 시편들 속에서 '그'라는 3인칭은 1인칭인 '나', 시인 자신이다. 시인의 순정한 첫 마음이다. '그'는 또 우주 삼라만상의 자연이다. 산이며 들이며 강이며 구름이며 온갖 종류의 꽃이다. 순정한 시인의 마음속에 깃든 선한 대자연 그대로가 '그' 자체다.

양 시인의 시는 1인칭, 2인칭, 3인칭을 나누어 쓰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곧 하나가 된다. 시적 화자(話者)인 '나'와 시적 대상인 '그대'는 3인칭 '그'로 해서 하나가 된다. 첫 마음, 그리움으로 하여 모든 인칭은 1인칭이 된다. '꽃의 일생'은 삼라만상, 대자연과 자연스레 한 몸, 한 마음이 돼가고 있는 시세계의 한 결정판이다.

"꽃이 피기 전에 어찌 아픔이 없겠느냐/ 어떤 큰 몸부림의 뒤에 문득 눈 시린 꽃잎으로/ 피어나는 것이겠지/ 그 누가 부르지 않아도 절정은 그렇게 오고/ 나비가 오고/ 새의 날갯짓에 놀라기도 하지/ 웬일인지 몰라도 꽃이 활짝 피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 치니/어찌 눈물 없이 꽃의 일생을 살았다고 말할까/ 사람도 한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술을 마시고/ 어둠 속을 헤맴은 흔한 일이라/ 그러다가 무엇을 두고 온 것처럼 오던 길을/ 잠깐 돌아보는 사이에/ 몸도 영혼도 시드는 것!/ 이와 같이, 저도 모르게 꽃잎은 지고/ 물에 떠서 흐르고/ 그 다음에는 언제나 또다시 긴 적막이 오겠지/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시 '꽃의 일생' 전문)

누가 부르지 않아도 꽃은 피고 지고 우리네 삶 또한 그런 대자연의 운행 법칙에 따른다는 주제가 담긴 시다. 또 꽃의 피고 짐, 생과 사의 대자연의 섭리가 자연스레 묻어나고 있다.

위 시에 드러나듯 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순간순간의 절정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생겨나서 자라고 서로 맺어지며 살아가다 마침내는 스러져가는 모든 생명의 순간의 가장 간절한 몸짓이 꽃이다. 나비와 새. 비와 바람과 뭇별 등 삼라만상의 말 없는 내밀한 언어다.

꽃의 일생, 우주 삼라만상 운행의 도가 자연스럽고도 간절하게 묻어나고 있다.

이렇듯 양 시인은 시로서, 그리움과 사랑으로서 생래적으로 자연과 하나가 돼 그런 깨달음을 우리들에게 축복처럼 전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쓴 생태 시편들과 함께 삼라만상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도(道)에 이르는 원숙한 시편들이 실려 있다.

양성우 시인은 지난 1970년 '시인'지로 등단, 1975년 집회에서 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해 교사직에서 파면됐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장시 '노예수첩'을 국내에서는 발표할 수 없어 일본의 잡지 '세카이(世界)'지 1977년 6월호에 게재했다가 국가모독죄로 투옥됐다. 두 시 모두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듯 당시의 유신독재 체제를 비판한 투쟁시입니다.

양 시인이 투옥되자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 측 문인들이 시인의 시들을 묶어 1977년 '겨울공화국'을 펴냈다.

그는 함평에서 태어나 학다리고와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발상법'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압록강 생각' 등을 출간했고 85년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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