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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이종범도 패싱···타이거즈 '신인왕 흑역사'

입력 2021.12.02. 17:58
[신인왕 놓친 타이거즈 선수들 <上>해태]
선동열은 동료 이순철에 고배
이종범은 삼성 양준혁에 밀려
이강철·조계현·이대진도 불운
24일 오후 군산야구장에서 `2009 CJ마구마구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렸다. 1회말 무사에서 KIA 선두타자 이종범이 안타를 때리고 있다. KIA 구단 제공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슈퍼루키' 이의리가 36년만의 타이거즈 소속 선수 신인왕을 수상한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그간 타이거즈는 11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10명의 한국시리즈 MVP를 배출하며 명문구단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또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과 '싸움닭' 조계현, '바람의 아들' 이종범 등 프로야구사에서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선수를 다수 배출했지만 유독 신인왕과는 연을 맺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데뷔 첫 해부터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신인왕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아쉽게 실패한 선수들을 해태 타이거즈 시절과 KIA 타이거즈로 나누어 2회에 걸쳐 되돌아본다.

1일 오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2012 프로야구 시범경기'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전 KIA 선동열 감독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IA 구단 제공.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첫 번째는 역시 선동열이다. 1985년 프로무대에 첫 발을 내딛은 선동열은 통산 367경기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이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기록했다. 데뷔 첫해도 마찬가지다. 선동열은 1985년 25경기에서 111이닝을 책임지며 7승4패 8세이브 1.70의 평균자책점으로 신인왕 수상에 모자람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경쟁자가 팀 동료 이순철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이순철은 데뷔 첫 해부터 해태의 1번타자를 꿰차 타율 3할4리 12홈런 31도루를 기록해 신인왕 싸움에서 선동열에 승리를 거뒀다.


◆입단 동기 이강철과 조계현

1989년에 해태는 걸출한 신인을 둘이나 배출했다. '핵잠수함'이강철과 '싸움닭'조계현이 그들이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1989년 해태에 데뷔한 이강철은 첫 해부터 활약을 펼쳤다.

당시 흔치 않았던 잠수함 투수였던 이강철은 36경기에서 195.1이닝을 소화하는 괴물같은 이닝소화능력을 바탕으로 15승8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23으로 선동열과 원투펀치를 맡았다.

연세대 출신의 조계현도 밀리지 않았다. 조계현은 31경기에 출전해 174이닝을 책임졌다. 7승과(9패) 함께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했다.

둘 중 누가 신인왕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성적이었지만 이번에도 주인공은 타이거즈가 아니었다. 이번엔 데뷔 2년차였던 '중고신인'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에게 신인왕이 돌아갔다. 박정현은 1988년 데뷔했지만 그해 6경기서 18.2이닝만을 소화해 신인왕 자격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듬해 38경기 242.2이닝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닝을 책임지며 19승 10패 2세이브 2.15의 평균자책점으로 이강철과 조계현에게 신인왕의 기쁨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태왕조의 마지막 4번타자' 이호성

1990년에도 해태의 신인왕 실패는 반복됐다. 이 해 해태는 1차 지명을 통해 아마시절부터 명성이 높았던 이호성에게 유니폼을 입혔다. 이호성은 입단 첫 해부터 3할4리에 7홈런 48타점 16도루로 아마시절의 명성이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역시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LG 트윈스의 김동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동수는 체력소모가 심한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110경기에서 타율 2할9푼 13홈런 62타점으로 공수겸장의 모습을 보였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Ace of Ace' 이대진

1993년은 해태가 신인왕의 갈증을 가장 크게 느꼈던 해였다. 1993년 해태에는 이대진과 이종범이라는 걸출한 신인이 둘이나 배출됐다. 이들은 각자 투타에서 곧바로 두각을 드러내며 팀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먼저 이대진은 묵직한 패스트볼과 낙차 큰 커브를 이용해 31경기서 10승 5패 2세이브 3.1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여기에 완투도 3차례 곁들이며 에이스로의 자질을 보였다.

이종범도 밀리지 않았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해태 유니폼을 입은 이종범은 첫 해부터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장타력과 컨택트능력, 빠른 발, 강한 어깨와 견실한 수비는 당시 프로야구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종범은 1993년 126경기에 모두 출전해 2할8푼의 타율에 16홈런 73도루 53타점을 올리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다만 이 해는 또 다른 전설이 등장해 둘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양신'양준혁이 그 주인공이었다. 양준혁 역시 입단 첫해부터 106경기에 출전해 3할4푼1리의 타율과 함께 23홈런 90타점으로 삼성의 공격을 이끌었다. 양준혁은 이 해 타율과 장타율, 출루율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홈런과 타점에서도 2위에 올라 리그를 주름잡았다.

이재혁기자 leeporter5125@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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