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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신·반독재···'녹두장군' 소설가 송기숙 별세

입력 2021.12.06. 14:43
전남대 교수 시절 민주화 앞장
교육지표 사건, 5·18 수습위원
해직과 옥살이 겪은 민족문학가
송기숙 전 전남대 명예교수. 

'실천하는 지식인' 송기숙 전 전남대 명예교수가 향년 86세로 5일 별세했다.

장흥 출신의 고인은 1973년부터 30여년간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78년 전남대 교수 10명과 함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해직됐다.

유신의 종말인 1979년을 향해 달려가던 1978년은 유신독재의 짙은 어둠이 무겁게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은 강의실을 나가 투쟁에 나서고 교수들은 시간표를 짜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지도보고서를 제출하기를 강요받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고인은 정치권력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상황 속에서 교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행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뜻을 함께 하는 교수들을 모아 성명서를 낼 계획이었으나 서울 쪽 교수들이 서명을 철회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전남대 교수 11명의 이름의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

성명서는 유신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집단적으로 저항을 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고인은 구속되고 나머지 10명은 의원면직 형식으로 강제 해직됐다. 교수들이 잡혀간 이틀 뒤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은 교수 석방을 외치며 떨쳐 일어났고 30여 명의 학생들이 구속·제적·정학을 당했다.

이 사건은 당시 학생들 위주의 반유신·반독재 투쟁에 사회적 지식인 계층인 교수들이 참여해 학생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계기로 광주 지역 학생운동 세력이 크게 성장했고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고인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내란죄를 적용받아 다시 징역 1년을 복역했다.

1984년 해직 7년 만에 복직한 뒤 19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다. 1987년 5월에는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를 설립해 5·18피해자 500명의 진술을 정리한 200자 원고지 2만5천장 분량의 '5·18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199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1996년 전남대 5·18연구소 초대 소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강의와 사회적 참여 외에도 1965년 문단에 데뷔한 이후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1920년대 반봉건적·반일본적 소작쟁의를 소재로 한 '암태도',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한 '녹두장군' 등은 이러한 작자의 정신이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에는 '교육지표사건'이 일어난 지 35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중 변호사 수임료를 제외한 전액인 7천여만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이러한 공로와 높은 뜻으로 기려 전남대학교는 2019년 고인을 제12회 '후광학술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1973년 현대문학상을 비롯해 만해문학상(1994), 금호예술상(1995), 요산문학상(1996) 등을 수상했다.

김대우기자 ksh43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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