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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지켰다

입력 2024.04.04. 10:32
마을 문화원형의 재발견 ⑨광주 동하마을 당산나무
동하마을 당산나무.

마을 문화원형의 재발견 ⑨광주 동하마을 당산나무

현대인의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마을 단위의 주택들은 대부분 도심에서 사라졌다. 마을 단위에서 거주했던 시절,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 줄도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웃주민들과 가깝게 지냈다. 이에 이웃주민이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더욱 많이 쓰였다. 사촌, 즉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다는 말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산업·경제 발달로 아파트로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옆집, 아랫집, 윗집 등 인근 주민들과는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로 무관심한 삶을 살고 있다.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층간 소음으로 서로 싸우고 살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뜻의 '이웃사촌' 역시 무색할 정도로 이웃과의 교류가 끊긴 지 오래다.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이웃사촌'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이 당산나무다.

마을 지킴이로 시골 마을 어귀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당산나무는 지난 우리의 역사와 늘 함께였다.

당산나무는 마을 지킴이로서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모셔지는 신격화된 나무다. 고을지킴이 신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마을 또는 고을의 지킴이 그 자체로 승화돼 있기도 하다.

광주에도 이 같은 당산나무가 몇몇 곳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 광주 서구 세하동 동하마을에는 수령 200년이 훌쩍 넘은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입구를 지나 100여m를 올라가면 마을회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당산나무는 지난 1995년 10월11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높이는 10여m, 둘레는 2.3m가 넘는다. 보호수로 지정됐을 당시 수령 200년으로 추정됐으니 현재는 220년이 넘는 셈이다.

광주서구문화원에 따르면 동하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나 광복 초기만 해도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제사인 당산제도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하마을 뒤에는 백마산, 각시봉 등의 산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서쪽에는 극락강 유역에 넓은 평야가 있어 대부분 논농사를 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시설원예 농가가 늘었으며 조선 초에 청주한씨가 입촌해 형성된 마을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연꽃에 비유된다. 당산은 마을 앞에 큰샘과 마을 곳곳에 샘 4개가 있는데 이를 샘당산이라 한다.

당산제는 우물물이 풍부하라고 기원하면서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동하마을의 당산제는 정월 14일 저녁에 마당밟기부터 시작해 12시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월 초순에 마을회의를 열어 깨끗한 사람으로 생기복덕을 맞춰 화주 1명, 축관 1명, 제관 1명 등을 선정한다. 일단 선정이 되면 마을의 큰 행사이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정성을 다했으며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화주에 선정되면 상가 등 궂은 곳을 가지 않아야 하며 개고기 등의 궂은 음식도 먹어서는 안된다. 선정된 날부터 제일까지는 매일 밤에 찬물로 목욕을 하고 만약 화장실을 다녀오면 깨끗이 씻고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 한동안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제사 음식은 돼지머리, 삼실과, 삼채, 시루, 메 등을 준비하며 음식물 준비 중에 3일간은 말을 하지 않고 아이들은 다른 집으로 보냈다. 말을 하면 침이 튀어 정결하지 못하며 아이가 있으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줄과 금토는 제일 5일 전에 하는데 당산 주위에만 한다.

제일 아침에 화주가 당산 주변을 깨끗이 청소를 한다. 초저녁에 농악대가 굿을 치면서 마을을 돌아 흥을 돋운다. 9시쯤 되면 화주집으로 가서 제물을 들고 당산으로 나오는데 농악대는 뒤에서 굿을 치면서 따른다. 축문을 먼저 소지하고 윈하는 사람들은 백지 한 장씩 나누어 들고 각자의 소원을 기원하면서 소지를 올린다.

제당에서의 헌식은 진설한 음식을 약간씩 덜어서 샘 옆에 놓는 정도다. 제가 끝나면 농악대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마을 앞 넓은 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날이 새도록 논다. 이 마을의 당산제는 제의 엄숙함보다 농악의 흥겨움이 더해 매우 축제적이다. 마당밟이는 15일부터 그믐까지 계속되는데 샘굿을 크게 치고 후에 가가호호 방문해 굿을 친다. 주인은 음식, 술 등을 내놓아 마당에서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민속자료로는 마을 어귀에 개 모양의 입석이 있었으나 6·25동란 수복 직후 만귀정 안으로 옮겨졌고 일제강점기와 광복초기에 걸쳐 동제와 당산제가 성행됐다. 동하마을의 당산제는 해방 이후 점차 사라졌으며 지금은 마을샘이 사라져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 밖에도 광주 서구 풍암동 신암마을에는 무려 '12당산나무'가 있었으나 현재는 두 그루만 남았다.

오래전 이곳에 12당산이 있었는데 각 당산마다 큰아버지 당산, 큰어머니 당산, 작은아버지 당산, 작은어머니 당산 등 이름이 붙여져 있었고,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보름이 되면 당산제를 올렸다.

지난 1982년 1월3일 '왕버들 보호수'로 지정된 이 할머니 당산나무는 둘레가 4.6m, 높이가 15m로 풍암지구 인근에서 발견된 선돌, 고인돌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12당산나무는 옛날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이에 신암마을에 도둑이 들어도 쉽게 도망가지 못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신암마을 당산제는 1980년대 이후 절차를 간소화해 운영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도시개발의 여파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가 2005년부터 풍암골 신암마을 당산제 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매년 풍암동 신암마을 당산제로 전승돼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지켜줬던 당산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글·사진=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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