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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패기 꺾는 돈선거판···낙선 뒤엔 빚 구덩이

입력 2021.10.01. 09:30
[청년소멸보고서 ⑧젊치인, 장벽 앞에 서다]
민평당 소속 광산구의원 도전 병인씨
대출 받고 전재산 털었지만 결국 좌절
잔혹한 현실은 '돈'···재기불능 치명타
정책·능력 대신 기성정치판 자금 싸움
'비례'는 허상···'청년특구' 등 길 터줘야

[청년소멸보고서 ⑧젊치인, 장벽 앞에 서다]

"청년 정치인들이 의외로 열정과 패기로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정치에 뛰어드는데 그런 청년들 한번 떨어지면 다음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죠. 돈 문제를 간과한 거예요. 저도 3년째 은행 빚 갚고 있고요."

박병인(38) 전 민생당 광주시당 조직국장은 정치가 지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2018년 제7회 전국지방동시선거에서 당시 민주평화당 소속으로 광산구의원에 도전했다. 중진 국회의원 밑에서 정치를 배우면서 정치에 따라서, 또 정책 하나에도 시민들의 삶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직접 정치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정치인 보좌 업무 등 오랜 시간 실무를 하면서 정치적 역량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출마를 결심한 지역에서 수년간 시민단체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바닥 민심도 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대가는 잔혹했다. 비민주당이라는 한계가 명확했고 선거 직전에 진영 표가 분산된 탓이 컸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장벽이자 잔혹한 현실을 일깨워준 것은 '선거 비용'이었다.

낙선이야 도전자가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낙선 뒤에 남겨진 빚은 그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선거가 끝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빚을 벗어던지지 못한 그에게 아직도 선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청년 정치인 실종…원인은 선거 비용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을 통해 지난 2018년 제7회 전국지방동시선거에서 최종까지 등록한 후보자를 분석한 결과(비례 후보자 제외) 총 835명의 후보자 중 광주·전남 조례에 따라 청년으로 분류되는 후보는 27명이다. 전체 후보자의 3.23%에 불과하다. 광주시와 전남도 청년기본법 조례에서는 청년을 만 18~39세로 정의하고 있다.

전남으로 한정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전남지역 후보자 650명 중 청년 후보자는 12명인 1.8%에 그친다. 사실상 무(無)에 수렴하는 셈이다.

지방선거는 청년 정치인들이 비례대표나 유력 정당의 전략 공천을 받지 않고 현실적으로 선출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다. 광역단체장부터 기초단체장과 광역의회, 기초의회 등 수많은 선출직을 뽑는다. 또 지역의 정책과 살림, 감시 등을 책임지는 가장 지역 밀착한 '풀뿌리 정치'의 장이면서도 중앙 정치로 인재를 공급하는 인큐베이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청년 후보들의 실종은 청년 정치의 태동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연코 이 같은 문제의 근원은 선거 비용이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한 청년 정치인은 "가장 작은 단위인 구의원 선거에서도 수천만원은 우습고 기초단체장은 몇억, 국회의원은 몇십억까지도 든다"며 "자산 여력이 있는 중장년층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데 청년들은 어떻겠냐. 회복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돈으로 치러지는 국내 정치 구조는 청년의 정치 진입을 막는 데서 나아가 어렵사리 제도권 내 정치에 진입한 청년들을 다시 밖으로 내몬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공식으로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기존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는 사이 정치를 꿈꾸는 청년의 '소멸'을 이끈다.


◆ 보이는 비용은 빙산의 일각…"피 말린다"

그럼에도 정치의 뜻을 품고 선출직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은 더욱 가혹한 현실에 몸서리친다. 박 전 국장은 "모아둔 돈 3천만원으로 충분히 선거를 치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고 말했다.

기초의원에 출마할 자격을 얻기 위한 공식적인 비용은 기탁금 200만원이지만 선거운동에는 기탁금의 수십 배가 들어간다. 선거공영제로 추후 15%이상 득표(10% 이상은 절반) 시 보전받을 수 있는 공인된 선거운동비용인 사무실 임차료, 공보물, 운동원 인건비, 유세차 등은 애교였다.

지역에서 출마하기 위해서는 수년 전부터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하는데 이때 쓰는 비용은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선출직에 도전하는 이들은 거기에 더해 사람 만나는 모든 순간이 돈이다.

박 전 국장은 "어린 생각에 아껴가면서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 "결과적으로 돈이 부족해 카드로 긁고 카드론을 받고 여기저기서 돈 빌리고 하는데 피가 말렸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낙선 뒤 그가 선거운동에 쓴 비용을 계산하니 1억 가까이 됐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대출로 충당한 빚을 갚고 있다. 선거운동비용을 일부 보전이라도 받았으면 다행이건만 6% 득표율에 그친 그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박 전 국장은 "선거비용 보전은 전체의 25%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면서 "사실상 선거가 모아둔 돈이 많지 않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어렵다"고 전했다. 사실상 부모 지원을 받지 않거나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례가 아닌 젊은 청년들은 물론 오래 정치를 해 온 청년 정치인들에게도 선출직은 도전 자체가 힘든 영역인 셈이다. 특히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처럼 당선 가능성이 높거나 어느 정도 득표율을 보장해 선거비용을 받을 수 없는 비주류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도전 자체가 인생을 걸어야 한다.

그는 "당시 선거가 끝나고 다른 지역에서 출마했던 한 청년 후보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당시 내 상황과 너무 흡사해 공감했다"면서 "낙선된 아픔보다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자산을 갖춘 중장년층의 정치인들은 출마했다가 떨어져도 그다음 선거에서 또 나올 수 있지만 청년들은 출마했다가 떨어지면 그다음이 없다"며 "당시 나와 같이 도전했던 동료 청년 정치인들 대부분이 출마를 포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전 국장 또한 "내년 지방선거에 도전하고 싶지만 막대한 선거 비용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먼저 몰려온다"며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비례로 '생색내기'…"과감한 전환 필요"

무엇보다 민주당이 절대 강세를 보이는 광주·전남에서는 사실상 민주당 공천이 전부에 가깝다. 이 때문에 상대 정당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보다는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더욱 중요하고 그로 인해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경선은 광역·기초의회의 경우 권리당원 투표 100%, 단체장은 권리당원 투표 50%와 여론조사 50%다.

권리당원 확보는 현역 또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정치인에 매우 유리한 구조다. 지역에 기반한 '뒷배경'이 없는 청년 정치인에게는 본선 진출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벽인 셈이다. 이 때문에 실제 대부분의 청년 후보들이 지방선거에서 당 경선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청년 표심을 얻어야 하는 주요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저마다 친(親) 청년 정당을 자처하며 비례로 청년 몫을 할당하는 노력을 보인다. 이마저 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회에서나 많아야 한 석 정도를 주는 데 그친다. 사실상 가능성 있는 비례 자리를 두고 당내 청년 후보들이 무한 경쟁을 펼치는 셈이다.

청년 후보들에게는 가산점을 주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기엔 한참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강수훈 전 민주당 광주시당 정책실장은 "100m 수영에 비유하자면 박태환 선수와 경쟁하는 수영 초보자에게 50m에서부터 하게 해도 결국은 진다"며 "청년들은 청년들끼리만 경쟁할 수 있는 청년특구를 만드는 등의 확실한 청년 우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년 정치인을 '심부름꾼' 정도로만 보는 정당 내 의사결정 구조 또한 청년 정치인을 좌절하게 하는 문화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은 "현재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령대와 청년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과 세대 간 격차가 정말 크다"며 "선출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으로 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면 당연하듯 심부름해야 하는 문화가 있고 그게 힘들어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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