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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성채, 천년의 모습 고스란히

입력 2020.11.19. 19:40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52> 중세의 비경을 간직한 샤탈라 下
한희원 작 '겨울로 가는 트빌리시'

고요의 화석이

모여 있는 저,

저 나무숲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나는 걷는다

죽음보다 더 깊고 먼

피안의 땅

별과 별사이를

바람과 바람사이를 걷다가

걷다가

늙고 큰 나무아래 앉아

쉰 소리로 노래 부른다

눈물이 지워지지 않는

너의 눈빛이 노을에 머문다

내가 걷던 저문 길

어둡고 쓸쓸하지만

너처럼 따뜻하다

사는 것이

모두들 풀잎의 침묵이지만

나는 살아간다

너의 눈빛으로

언덕 위 나무 한그루

미동도 없이 서있다

아, 사는 것이 이와 같다

(한희원의 시 -사는 것이 이와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고향이 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 뛰어 놀았던 고향 풍경은 가슴에 화석으로 남아 어느 날 불현 듯 다가온다. 그럴 때면 아련한 아픔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 찾아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추억의 장소를 찾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으면 마음에는 생채기가 남는다.

유년기를 보냈던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집과 골목길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고지되어 거대한 포크레인이 들이닥쳐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닐 때 가슴 안에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다. 지상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풍경 속을 걸어 다니며 옛 친구들 집에서 창틀이며 문짝, 명패 등을 수거했다. 오래 묵은 물건에는 시간이 들려주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내 고향은 언덕 위를 지키던 아름드리 나무들은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는 큰 몸짓을 자랑하는 생소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사라진 풍경 속에는 지나온 사랑이 다 들어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고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 지금은 내 곁을 떠난 어머니를 대하듯 포근하다.

천 년 전 중세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신화의 마을 샤틸리는 어떤 모습일까.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해발 2700m의 험준한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야만 만날 수 있는 곳. 조지아는 경제 여건상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다. 특히 군사와 무역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의 산악 도로를 달리면 온 몸의 신경들이 곤두서는 아찔함을 경험하게 된다. 카즈벡의 스테판츠민다로 가는 도로는 2000m가 넘는 산악 도로이지만 러시아와 교류가 빈번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렇지만 샤틸리로 가는 산악 도로는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6시간 정도를 가파른 낭떠러지 길을 보며 달려야 한다.

한희원 작 '와이너리 앞 정원'

아스라한 낭떠러지 길 아래로는 코카서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강물 소리만이 외롭다. 강 옆의 초목에는 말이 홀로 풀을 뜯고 있다. 산과 산 사이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나무들은 외로울 틈도 없이 흔들린다. 바람결을 따라 그곳을 찾은 이방인의 마음만 어지러울 뿐이다. 겹겹이 보이는 산맥을 넘고 넘으면 미지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다. 11세기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성채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거대 자본의 힘을 거부한 채 천 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색이 바랄대로 바란 암갈색의 석조로 지어진 성채가 그 보다 더 오랫동안 산 아래의 세월을 견디며 서 있다. 60개의 망루로 지어진 방어용 성채이다. 샤틸리 마을은 러시아 체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깊은 산 속의 성채도 강대국의 침입을 견뎌야 했던 운명이었을까. 조지아는 바다와 접한 항구 도시나 내륙 깊숙이 산맥 틈 사이에 있는 마을 등 가릴 것 없이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피할 수 없었다. 샤틸리 성채는 천 년 고독을 안으로 삭히며 견고하게 서 있다.

성채 사이로 먼지가 묻어 하얗게 퇴색한 구불한 길이 이방인을 안내한다. 마을 주민들이 성채 일부를 호텔로 개조해 이용하고, 뒤쪽 언덕에다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목축과 양봉으로 살아가는 샤틸리 마을 사람들. 샤틸리는 여름 한철과 짧은 가을 초입만 여행과 트래킹을 허용해 관광객에게 문을 열어준다. 마을 주민 일부분은 겨울이 오기 전에 샤틸리를 떠났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 혹독한 겨울을 고립된 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피로를 풀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호텔이 우리 화폐로 오만 원 정도면 이용 가능하다. 천 년 고성에서의 하룻밤 이용료가 이 정도면 이방인에게는 엄청난 행운인 셈이다. 조지아인도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숨어 있는 중세의 비경. 이곳에서는 시간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하는 고독의 끝자락을 즐기는 일이 남아있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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